[팽동현의 AI인] "챗GPT, 자동차로 치면 엔진… 이제 제품화 단계로 가야"

팽동현 2023. 2. 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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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연 KAIST MARS인공지능통합연구센터 소장
AI 편향성·부정확성 해결책 없어
범용성 기대 말고 목적 맞게 활용
기업들, 논문 수보다 임팩트 중요
오혜연 KAIST MARS인공지능통합연구센터 소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벌인 세기의 바둑 대결도 약 7년 전의 일이다. 미래라고 여겼던 AI(인공지능)는 어느새 현실이 돼 산업과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챗GPT가 연일 뉴스란을 장식하는 오늘날, 우리 AI 분야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세계적으로 가열되는 AI 경쟁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한국을 대표하는 AI인들을 만나 그들이 보는 현재와 미래를 듣는다.

뉴립스(NeurIPS,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는 AI(인공지능)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다. ICML(국제머신러닝학회)과 함께 양대 학회로 꼽힌다. 1987년부터 이어져온 이 학회에선 매년 AI 관련 분야 석학들과 굴지의 빅테크 소속 전문가들이 모여 강연과 토론을 펼친다.

AI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커지면서 최근 국내 유수의 기업들도 기술력을 알리기 위해 뉴립스에 제출·채택된 논문수를 경쟁적으로 홍보한다. 이런 수많은 논문에 대한 선정 작업을 지난해 뉴립스에선 한국인이 학술위원장을 맡아 총괄했다. KAIST MARS인공지능통합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오혜연 전산학부 교수다. 올해는 뉴립스 행사 전반을 책임지는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오픈AI의 대화형AI '챗GPT'가 세계적으로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기자와 만난 오 교수는 AI에 대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애정을 보였다. 특히 AI의 범용성을 바라는 세간의 이른 기대에는 냉철한 진단을 내렸다. AI분야 최전선에 서있는 그의 주문은 '목적 중심 AI 개발·활용'이다.

◇언어의 매력, AI의 길로 이끌다= "MIT(메사추세츠공대) 학부에선 수학을 전공했지만 지금 와선 크게 상관있는 것 같진 않아요. 당시 노엄 촘스키, 스티븐 핑커 등 대가들의 연구에 사로잡혀 언어에 관심을 두면서 언어정보학 길에 들어섰습니다. 20여년 전 했던 연구들을 돌아보면 지금의 챗GPT 등과 관련이 많은 것 같아요."

국내 AI 분야 종사자들의 이력을 보면 흔히 검색엔진이나 데이터마이닝, 간혹 뇌과학 등과 관련이 있다. 국내에선 다소 이색적인 편이지만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초학문을 충분히 닦고 나서 AI분야에 뛰어들어 자신의 전문지식을 AI에 접목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 교수는 미국 카네기멜론에서 언어정보학 석사, 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보다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살릴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마련돼야 국내 AI분야 발전이 빨라질 수 있다는 게 오 교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주장이다.

오 교수의 주 연구 분야는 언어모델이다.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진 연구는 가짜뉴스를 효과적으로 자동 근절하는 알고리즘을 2017년 개발한 것이다. 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협력, '확률적 최적 조절법' 등 수학적 기법을 활용해 소셜미디어 등에서 가짜뉴스가 대거 확산되기 전에 적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조선왕조실록 관련 연구를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미 현대 표준어로 번역이 완료됐고 디지털화까지 됐지만, 상세 내용은 이해나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있다. 이는 한문과 한글, 그리고 각각의 옛말과 당시 쓰이던 표현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 담당기관이 이를 우리가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모두 새롭게 번역하는 데 예상한 소요시간은 20년, 영어 변역은 20년이 예상됐다. 이에 오 교수가 조경현 뉴욕대 교수와 함께 머신러닝을 접목할 것을 제안했다.

오 교수는 "처음 검증 방법을 고안하는 것부터 모두 완역하기까지 총 6개월 정도 걸렸다. 조선왕조실록 구역보다는 번역 품질이 낫기에 앞으로 관련 연구자들이 참고하기에도 수월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영어도 셰익스피어 때랑 지금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어만큼 많은 변화를 겪은 언어도 흔치 않다. 언어 연구자로서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다"고 밝혔다.

◇챗GPT 긍정적…목적 중심 연구 이뤄져야= 최근 관심이 뜨거운 LLM(거대언어모델) 챗GPT에 대한 오 교수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기술의 진보가 고무적이고 앞으로도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 한계도 파악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했다. 오 교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편향성(bias)이다. 학습한 데이터가 편향됐거나 알고리즘 자체가 치우쳐 설계될 경우 AI가 혐오 표현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을 수 있음은 이미 여러 사례로 나타났다. AI의 일상화가 가속화되는 현재도 아직 완전한 해결책은 없기에,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부정확한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 교수에 따르면 전혀 상반된 데이터, 예를 들어 극좌 커뮤니티와 극우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결과를 모두 반영하면 마치 정반합 원리처럼 편향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적은 경우에는 이런 방법도 활용하기 어렵다. 최근 오 교수가 다중언어모델을 위해 다양한 국가의 언어를 함께 연구하면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 교수는 챗GPT를 "자동차로 치면 엔진과 같다"고 표현했다. 엔진을 중심으로 자동차를 만들 듯, 이제 프로덕트화하는 게 다음 단계다. 하지만 AI 윤리, AI 저작권 등 당면한 기술 외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다.

이에 오 교수는 '도메인 특화'로 다음 단계를 예측했다. 오 교수는 "AI모델을 너무 범용적으로 활용하려 하거나 그런 모습을 기대하다 보니 윤리나 저작권 등 문제가 더 불거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특정 전문영역에 특화시킬 경우 이런 이슈에서 좀더 자유로워지면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데 가까워질 수 있다"면서 "AI의 프로덕트화를 위한 다음 단계를 위해선 목적 중심의 구축과 활용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중요한 것은 임팩트, 아시아 AI 중심지로 거듭나야= AI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AI 분야로도 번지는 가운데, 오 교수는 한국이 아시아권 AI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모두 다 잘하려 들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잘 선택해 집중한다면 해당 분야를 세계적으로 이끄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뉴립스에 논문을 내는 기업들에게는 '임팩트'를 주문한다. "몇 편을 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단계는 졸업할 때가 됐다"며 "이젠 어떤 의미 있는 연구를 했는지, 양과 함께 질도 더욱 챙길 정도로 성숙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챗GPT가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준 것 같다"는 오 교수는 앞으로도 언어모델 연구에 전력하며 후배들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더 이상 연구실에만 있지 않고 이미 우리 일상에도 밀접해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금 깨달았다"면서 "거대한 흐름과 굵직한 행보들 앞에서 주니어 연구자들이 스스로의 존재와 역할을 작게 느낄 수 있지만 그런 두려움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관점을 살려 기술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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