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릭스미스 ‘날개없는 추락’

김명지 기자 2023. 2. 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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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임시주총 이튿날 새벽까지
소액주주 출입막고 경찰 출동
2019년 17만원하던 주가는 1만원으로 하락
CFO출신이 대표인 회사에서 현금 50억 인수
“투명하지 않은 정보 공개가 문제”
2019년 9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여의도 본사에서 헬릭스미스 임상3상 결론 도출 실패 관련 발표를 하는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이사. 2019.9.24/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1박2일 주총의 아이콘’

한때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던 헬릭스미스를 요즘 주식 투자자들이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투자자들이 이렇게 부르는 것은 요즈음 열리는 헬릭스미스의 임시주주총회가 소액주주와 기존 경영진 간의 분쟁으로 쉽게 결론을 못 내는 데 따른 것이다. 당장 전날(지난달 31일) 있었던 임시주주총회도 이날 새벽 2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주총은 시작부터 진통을 거듭했다. 회사는 오전 9시 이후에 도착한 소액 주주에겐 ‘주총이 이미 시작했다’며 출입을 막았고, 소액 주주가 선임한 변호사도 자격이 없다고 입장을 막아 섰다. 주총장 안에서도 양측이 부딪히면서 경찰까지 출동했다.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며 새벽까지 회의가 이어졌지만, 양측의 힘겨루기에 승패가 갈린 것도 아니었다.

이날 주총 안건은 지난해 말 헬릭스미스를 인수한 카나리아바이오엠이 추천한 인사를 사내,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추천 인사 5명 가운데 2명이 진입에 실패했다. 김선영 대표는 사내이사로 선임됐지만, 세종메디칼 김병성 대표 선임은 불발됐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조만간 막장 중에 막장 2라운드가 곧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는 주총 무효 소송과 이사 직무정지 신청을 예고했다. 전날 주총장의 소동이 알려지면서 이날 헬릭스미스의 주가는 1만 710원으로 전날에 비해 960원(-8.23%) 급락하며 거래를 마감했다.

◇ 주총장 출입 제한에 양측 부딪히며 경찰 출동

유전자를 자르고 붙여서 세상을 바꿀 ‘꿈의 신약’을 개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헬릭스미스가 바닥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헬릭스미스가 카나리오바이오엠에 경영권을 넘긴다고 밝힌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헬릭스미스는 약 35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고, 카나리아바이오엠이 이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는 계획을 밝혔다. ‘제3자 배정 신주 유상증자 방식’의 인수합병(M&A)이었다. 통상 경영권을 넘기는 계약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이기 마련인데, 이 계약은 신주 발행 가격이 기준 주가보다 13% 낮았다. 할인한 가격으로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여기에 신주 납입금 350억원 가운데 300억원은 카나리오바이오엠의 종속회사인 세종메디칼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충당했다. 카나리아 측은 현금 50억원으로 시총 4000억원짜리 회사를 무자본 인수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헬릭스미스가 보유한 1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것이 업계 분석이었다.

인수 주체인 카나리아바이오엠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나한익 공동대표가 헬릭스미스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었고, 카나리아바이오엠은 자동차 내장재 제조업체가 비료회사인 현대사료 등을 인수해 우회상장하며 바이오업체로 변신한 기업이었다. 이런 소동 가운데, 정작 발표가 예정됐던 헬릭스미스의 주력 신약 파이프라인 ‘엔젠시스’ 글로벌 임상 3상의 최종 결과 발표는 연기됐다.

2019년 9월 김선영 헬릭스미스 사장이 당요병성신경병증 치료제 미국 임상 3상 실패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 바이오벤처 성공신화에서 약속 뒤집는 불신

이번 헬릭스미스 사태의 정점에는 국내 바이오벤처로 1세대로 꼽히는 김선영 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국내 유전자치료제 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서울대 미생물학과 출신의 그는 미국 MIT와 하버드대 석사 학위, 영국 옥스퍼드 유전학 박사를 받은 촉망받는 인재였다.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발굴한 신약 후보물질 엔젠시스(VM202)를 통해 1996년 학내 벤처 바이로메드(현 헬릭스미스)를 설립했고, 10년 연구 끝에 2005년 12월 ‘기술특례상장 1호 기업’으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코스닥 상장의 목적은 엔젠시스의 글로벌 임상이었다.

그로부터 13년. 글로벌 임상 3상까지 진행했지만, 미국에서 임상 3상 결과를 분석하던 중 문제가 생겼다. 2019년 일부 환자가 위약(僞藥)과 엔젠시스를 혼용했을 가능성이 발견됐고, 임상 3상 데이터를 쓸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회사는 임상에 쓴 신약 개발비 900억원을 손실 처리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해 8월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나섰다. 그런데 이듬해인 2020년 고위험 사모펀드에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헬릭스미스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옵티머스 등 고위험 자산에 2643억원을 투자했다. 투자금이 연매출의 60배에 달했는데, 원금 회수를 못한 상품이 부지기수였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창업자

손실비율(51.4%)은 자기자본의 절반을 넘었고, 헬릭스미스는 1년 만에 286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해야 했다. 김 대표는 2019년 유증 때 ‘최소 2년 유증은 없다’고 했던 말을 1년 만에 뒤집었다. 이 와중에 김 대표가 장남에게 경영권 을 승계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빈축을 샀다.

소액주주들의 반발로 증여 계획은 취소지만, 이를 계기로 소액주주들과 회사 측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그러다 김 대표가 지난해 돌연 회사를 카나리아바이오엠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동안 헬릭스미스 시총은 4조원에서 5000억원으로 쪼그라들고, 주가는 17분의 1토막이 났다. 피해는 헬릭스미스를 믿고 투자한 소액 주주들이 고스란히 보고 있다. 바이오업계는 헬릭스미스 사태가 가뜩이나 얼어붙은 투자 시장을 경색시킬까 우려하고 있다. 신약 개발 특성 상 임상 실패의 위험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헬릭스미스는 경영 전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다만 김선영 대표는 “헬릭스미스가 갖고 있는 파이프라인 외에도 카나리아바이오의 유망 물질과 세종메디칼의 인프라를 결합해 세계 시장에서 더욱 주목받는 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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