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폐쇄적 기득권과 규제 그리고 혁신성장

유근일 2023. 2. 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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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돌아보면 위기와 도전이 세계 경제를 휘몰아칠 때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을 발굴한 나라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기업가정신을 가진 미래 세대가 새로운 기술과 산업에 도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밝힌 신년사에서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우리 경제는 저성장 기조, 글로벌 경기침체, 3고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술 기반 벤처기업이 활성화돼야 한다. 위기 극복과 디지털경제 시대를 대비하는 벤처기업의 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그렇다면 벤처기업 성장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기업가정신을 통해 발현된 신산업 분야 시장 환경 조성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메시지를 낸 것처럼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3대 분야뿐만 아니라 신산업 분야에서도 걷어내야 하는 기득권이 존재한다. 신산업과 기존 산업 간 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각종 신산업은 기존 산업과 기득권을 위한 규제나 사회적 합의 지체로 싹을 틔워 보기도 전에 서비스를 포기하고, 전통적인 이해관계자에 의해 설정된 법안들이 신산업 날개를 옭아 매고 있다.

특히 택시업계에 이어 의사, 변호사, 세무사, 공인중개사까지 신산업 분야와 전문 직역단체 간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관련 산업의 디지털전환에 나서자 기존 사업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는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경찰과 검찰 수사, 재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소비자 편익이 크고 실현 가능성이 높아서 사용자가 늘고, 전문 분야에 진출하는 벤처기업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득권의 저항은 대한민국 규제 장벽을 높이는 상황이다. 기득권의 저항은 신산업과 기존 산업이 부딪치면서 발생한다. 기존 법과 제도의 틀로 새로운 4차 산업혁명 혁신을 재단할 수는 없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유연한 접근과 시각이 필요하며,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정부와 입법부의 적극적인 조정과 중재 역할이 중요하다.

그동안 발생한 몇몇 충돌에 정부가 개입해서 중재했다. 핀테크는 규제샌드박스 등을 통해 사업 확장과 비즈니스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모빌리티는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권이 일명 '타다금지법'을 제정, 시장을 떠나야 했다. 이렇듯 중재 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돌발변수가 상시 존재,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중재하는 정부와 입법부 역할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또한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문 직역단체가 부당하거나 법을 뛰어넘은 권한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담당 부처의 철저한 지휘와 감독이 필요하다. 기술 기반 벤처기업은 디지털경제 시대에 공급자와 소비자를 잇는 필수 요소인 만큼 기존 규정 등이 벤처기업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신산업 분야 가이드 마련은 필수적이다.

혁신 성장의 성패는 사실상 규제개혁을 통한 시장 친화적 환경 조성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도로 체계는 아무 교차로에서나 유턴할 수 있다. 유턴할 수 없는 곳만 금지표시를 해 놓았다. 산업 규제도 비슷하다. 금지사항(네거티브·Negative)만 지키면 나머지는 모두 자유롭게 해도 된다. 마치 커다란 목장에 양 떼를 풀어 놓고 울타리를 쳐 놓은 방식이다. 울타리 안에 있는 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볼 기회를 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 차량·숙박 공유, 원격의료, 핀테크 등 혁신 기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네거티브 규제가 한몫했다. 규제 걱정 없이 얼마든지 신기술을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어서 연구자는 오로지 연구개발(R&D)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허용(포지티브·Positive)하는 것만 할 수 있다. 국내 도로는 유턴 허용 지역이 따로 있다. 규제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는 금지하고, 할 수 있는 사항을 정해 놓았다. 우리도 네거티브 규제 원칙에 따라 모든 부문에서 '사전 허용 후 규제' 도입의 원칙을 적용하고, 신산업에서 광범위하고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사전 허용 원칙' 채택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규제가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규제시스템 정비가 요구된다. 산업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동반하는 만큼 무조건 위험을 회피하기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규제영향평가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글로벌 상위 100대 벤처기업 가운데 55%는 우리나라에서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으로만 사업이 가능하다고 하는 통계는 아직도 대한민국 시장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보여 준다.

디지털전환이 가속되면서 법, 제도, 정치 등 비물질적 문화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부조화는 우리가 시급히 극복해야 할 숙제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때문에 발생하는 기득권과의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사업화할 수 있느냐가 국가 혁신과 경제발전, 결국은 국민 복지까지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혁신을 앞세운 신사업과 기존 사업 간 갈등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정부·업계 모두 혁신 성장에 필요한 여건을 마련하고 갈등 해소와 지원 방안 강화라는 두 가지 해결책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추진책이 필요하다. 기득권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라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중재·합의를 통해 '한걸음'씩 양보해서 '더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신산업 분야의 기득권 저항은 강력하겠지만 혁신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꼭 걷어야 하는 규제임은 틀림없다.

자료:아산나눔재단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 sk@pointmobile.com

〈필자〉강삼권 회장은 충남 서천에서 출생했으며, 1990년 원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990~1995년 대륭정밀 재직 이후 1995년 백금티앤에이를 공동창업했고, 1999년에는 파이닉스시스템을 창업했다. 이후 절치부심 끝에 2006년 산업용 개인용정보단말기(PDA)를 생산하는 포인트모바일을 창업, 2020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2021년 2월 제10대 벤처기업협회 회장에 취임, 벤처기업인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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