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왜 부자만 대출' 그 선동이 부른 참사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3. 2. 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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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누구든 내집마련 대출
금리인상 미루며 빚 부추긴 셈
가계대출 연착륙 여부가 뇌관
영끌족 빚 제대로 갚게 도와야

위스키 한 잔이 참사를 불렀다.

1927년 7월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벤저민 스트롱 총재는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에도 금리 인하를 강행했다. 그때 유럽 중앙은행들을 설득했던 논리가 "금리 인하는 뉴욕증시에 위스키 한 잔 정도의 효과를 줄 것"이었다. 하지만 증시는 아예 한 병을 원샷한 양 급등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1929년 10월 뉴욕 금융시장 붕괴로 촉발된 대공황을 분석할 때 미 연준이 거품 해소 과정에서 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린 점을 지적한다. 벤 버냉키가 2002년 11월 밀턴 프리드먼의 90세 생일 때 연준을 대표해 사과한 것도 이 부분이다. 하지만 금융사학자 에드워드 챈슬러는 대공황 직전까지 형성됐던 거품에 주목했다. 안정적인 물가 상승률에 취해 연준이 거리낌 없이 금리를 낮췄는데 그게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거품을 낳았고, 이게 위기의 단초가 됐다.

1980년대 말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출발도 사실 초저금리였다. 할인율을 2차 대전 이후 최저치까지 낮추면서 만들어진 거품으로 한때 일본 증시 시가총액이 미국의 2배까지 커졌고, 도쿄의 황궁 땅값은 캘리포니아주 전체 토지 가치를 넘어설 정도였다. 놀란 일본 중앙은행은 황급하게 금리를 올렸다가 경제가 꼬꾸라지자 금리를 다시 확 낮추는 식으로 우왕좌왕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금융시장과 묘하게 겹친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초저금리를 장기간 유지시키고, 코로나19 위기 때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유동성을 증가시켰다. 이에 따른 거품을 없애려고 급하게 금리를 인상하는 모습까지 판박이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 아파트 샀던 '영끌족'과 아파트 매입 시기를 놓쳐 우울했던 '벼락거지' 처지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다행히 한국은 올 들어 금융시장이 크게 안정되고 있다. 관치 논란을 무릅쓰고 뒤늦게나마 개입에 나선 당국의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과거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미 금리정책을 놓고 국민은 둘로 쪼개졌다. 당국의 대출이자 개입에 영끌족은 환영이지만 벼락거지로 내몰렸던 무주택자는 불만이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하면 뭐 하냐, 당국 압박으로 대출금리가 떨어지면 무용지물 아니냐" "이자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집값 하락을 막아 무주택자들이 저가에 매수할 기회를 박탈할 것" "투기로 집 샀던 사람은 자기 책임하에 대출도 갚아야지 왜 도와주냐. 결국 온 국민이 낸 세금으로 투기세력을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주택자들 심정은 이해하지만 금융 역사는 거품 해소가 경착륙으로 이어지면 결국 재앙으로 끝난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준다. 영끌족 대부분은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30~40대 중산층이다. 이들을 파산으로 몰아봐야 피해는 결국 온 국민이 겪는다. 금리 역사를 보면 현재의 고금리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영끌족 이자 고통이 꽤 오래갈 것이란 얘기다. 그들이 집값 하락을 잘 견디면서 빚을 잘 갚게 돕는 것이 경제 전체 후생 증가를 위해서도 낫다.

이것도 문재인 정부 탓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왜 부자만 대출해주냐"는 정치 선동은 지금 봐도 패착이다. 누구나 집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대출을 부추기지 않았나. 집값 잡겠다는데 되레 초저금리를 유지했고, 가계대출 총량이 급증하는 것을 방치했다. 영끌족만을 탓하기 어려운 이유다.

금리 인상 한 방이면 집값이 잡혔을 텐데 거시지표에 취해 애써 외면한 결과다. 진작 위스키 잔을 치웠어야 했는데 그 후유증을 지금 고스란히 떠안았다. 초읽기에 들어간 대출 연체율 급증이라는 시한폭탄도 걱정이다.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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