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저출생'이라 불러도 직시해야 할 것

2023. 2. 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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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출산도구화' 비판에
저출산 대신 저출생 표현 등장
용어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불평등·물질주의·정치 무능
저출산 뒤 도사린 복합 문제

저출산이 맞을까, 아니면 저출생이 맞을까? 둘 다 맞는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을 지칭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유모차와 유아차가 같은 것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인 것과는 다르다. 유아를 태운 수레는 누구나 밀 수 있기에 유모차보다는 유아차나 아기차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면 출산과 출생은 뭐가 다를까? 출산은 당사자(부모)의 선택 행위이지만 출생은 당사자(아이)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 사건이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아 기를 의향과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는 가늠자는 출생률보다 출산율이다. 출산율은 가임기 인구의 선택을 바탕으로 나온 값이지만 출생률은 총인구 대비 출생아 수를 보여주는 값으로서 출산율과는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가령 출산율이 회복되지 않아도 가임기 인구가 많으면 그 시기의 출생률은 높게 나올 수 있다.

2001~2015년 출생아 수는 한 해 40만명대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는 30만명대, 20만명대까지 곤두박질했다. 반면 1990년대 출생아 수는 한 해 60만~70만명 선이었는데, 그들 부모가 한 해 약 100만명씩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생이 지금 어떤 환경과 전망하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고령화 속도와 장래 인구 구조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10년을 '골든타임'이라 하는 것이다.

그 10년은 취업, 집 구하기 등 여러 면에서 청년들에게 특별히 힘든 '하드타임'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가만있어서는 안 되는 시기다.

세계 최저의 극저출산, 특히 2015년 이후 더 떨어진 출산율은 가치관의 변화가 큰 요인이겠지만 그 배후에는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다차원적으로 누적된 불균형과 불평등, 물질주의와 비교 성향의 팽배, 대형 사고 후의 안전 불안, 성 간 갈등도 가세한 다중적 사회 갈등, 통합 의지와 개혁 능력이 미약한 정치 등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 집단은 임금 격차가 벌어진 시기에 계층적으로 갈라진 부모 세대에게서 태어났다. 그들의 출산 거부는 경쟁의 병목 현상과 계층 대물림이 심해지고 비교와 반목을 부추기는 세상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묵언의 의사 표시다.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 제5조는 "국민은 출산 및 육아의 사회적 중요성과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변화를 인식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하여야 한다"며 국민의 책무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의 출산 장려 방침에 청년들이 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런 시대가 아니다. 2016년 말 정부 사이트에 올라온 대한민국 출산 지도는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본다는 비판을 받았다. 저출산이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도 그 연장선에 있다.

기본법에 등장한 국민은 청년만이 아닌 모든 국민이다. 사실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의 핵심은 기성세대, 특히 기득권층의 동참과 사회적 염치가 필요한 개혁들이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도 안심시킬 수 있는 연금 개혁, 세대 간 정의도 고려한 조세 개혁, 세대 내 연대를 도모하는 복지 재원 조달, 의사를 보기 힘들어진 과목의 진료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의료 개혁,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뒤처진 아이와 입학 후에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하는 부모의 고충을 해소하는 교육 개혁, 노동시장에서 성별과 육아에 따른 불리함을 없애는 개혁 등이다.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이라는 표현을 저출생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이 나온 이유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적 올바름이나 용어적 올바름에 관한 시비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출산은 강한 자발성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극도의 저출산을 초래한 복합 문제에 대한 직시와 해결 노력이 저출산이라는 표현의 지양과 함께 약해져서도 안 된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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