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의사가 된 소녀
2015년 지방자치단체 결연 프로그램을 통해 한 소녀를 만났다.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고등학생인데, 어려운 가정형편에 힘들게 공부하고 있으니 꿈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A는 제과점 케이크를 사 들고 점심 먹기로 한 장소로 나왔다. 단정한 모습과 인사성에 마음이 끌려서 오랜 시간 이야기했던 것 같다. 관할 지방자치단체 및 주변의 지원으로 동네 학원을 다니는 한편 혼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장학금을 받으며 집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인데, 그 이유는 본인이 사회의 도움으로 공부하고 있으니, 의사가 되어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잘 치료해서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필자도 돕고 싶어서 의대 입시 준비에 어떤 것이 더 필요한지 물어보니, 영어 개인지도와 입시 컨설팅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수학 공부는 혼자서 할 수 있는데, 영어는 혼자 공부로는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아서 고민이었고, 학교 선생님과 입시 상담을 하기는 하지만 학원에서 전문적인 입시 컨설팅을 받고 있는 친구들에 비해서는 부족할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다. 영어는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적은 비용으로 1년 정도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입시 컨설팅은 지인의 소개로 서울 강남의 입시 전문가와 면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전문가 분이 아이에게 의대 입시에 대한 공포심을 만들고 자신감을 꺾는 말을 하는 바람에 실망하는 경험을 한 후, 전문가에게 의지하는 대신 내신 관리를 스스로 잘하고 교내에서 의료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의 노력으로 수시 입시에 대비하는 방법을 택했다.
2016년 8월에는 대입 수시 원서와 관련하여 A의 고3 담임 선생님과 입시 상담을 하였다. 담임 선생님에 의하면, 보호자인 할머니는 재수시킬 경제적 형편이 안 된다는 점을 걱정하여 의대보다 입학이 수월한 과로 지원하기를 바라고, A도 그러겠다고 하는데,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인지 확인이 덜 된 상태에서 원서를 쓰는 것이 교사로서 망설여진다는 말씀이었다. 필자가 이야기해보니, 집안 형편을 배려해서 양보하는 것일 뿐 속마음에서는 여전히 의대 진학을 원하는 것이 분명하여, 의대 원서를 쓰도록 아이를 격려하였고, 보호자의 허락도 받았다. 그리고 A는 그해 수시 지원한 의대 중 한 곳에 합격하였다.
며칠 전 A가 의사 국가고시를 무난히 치르고 병원의 인턴 선발에도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너무 기쁘고 대견하여 눈물이 났다. 의사가 되고 싶어서 어려운 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열심히 공부했던 소녀를 도와준 우리 사회의 복지 시스템, 교육 시스템,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단체 분들,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 후원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이의 꿈과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좋은 학군, 좋은 학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A는 스스로 증명하였다. 또한 대입 수시 제도에 대한 세간의 비판(수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불리하고 부모를 통해서 스펙을 만든 아이들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A의 사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한 소녀가 대입 수시 제도를 통해서 의대에 합격했고, 그리고 마침내 의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윤정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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