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법원 “절도범이 훔쳐온 불상, 일본 사찰에 소유권”

강정의 기자 2023. 2. 1. 16: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심 뒤집어 서산 부석사의 인도 청구 ‘기각’
불상 제작·취득 인정받은 ‘고려시대 부석사’
현재 ‘서산 부석사’와 동일 여부 증명 안돼
왜구 약탈 개연성 커도 취득시효 완성 판단

절도범이 일본 사찰에서 훔쳐 국내로 반입한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에 대해 2심 법원이 “불상 소유권은 일본 사찰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전고법 민사1부(박선준 부장판사)는 1일 서산 부석사가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2017년 1월26일 “왜구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게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은 1심 재판부 선고에 항소해 이 사건 항소심은 7년간 이어져 왔다.

금동관음보살좌상. 연합뉴스

재판부는 “고려시대의 서주(고려시대 당시 서산) 부석사가 이 사건 불상을 제작하는 등 취득했다는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고려시대의 서주 부석사가 지금의 서산 부석사와 같은 것인지 원고가 증명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원고가 불상 소유권을 취득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건 불상은 고려시대 왜구에 의해 약탈당해 일본으로 불법적으로 반출됐다는 개연성이 상당하다”면서도 “일본 간논지(觀音寺) 측의 취득시효(20년)가 완성된 만큼 간논지 측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덧붙엿다.

재판부 “불상 반환 문제는 유네스코 협약이나 국제법에 따라 결정해야”

다만 재판부는 “이번 민사소송은 소유권의 귀속을 판단할 뿐이며, 최종적으로 문화재 반환 문제는 유네스코 협약이나 국제법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 공방 2심 선고를 앞둔 1일 오후 1시30분쯤 법정에 입장하기 위한 방청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강정의 기자

이날 재판에는 한국과 일본의 기자, 전문가 등 100여명의 방청객이 몰렸다. 결국 좌석이 한정되면서 70여명만 법정에 입장했고 일부 방청객은 변호사석에 앉아 재판을 듣기도 했다. 2017년부터 ‘서산부석사금동관세음보살좌상제자리봉안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온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화성을) 도 모습을 보였다.

과거 간논지에 있던 불상을 국내로 훔쳐 온 절도범 중 1명도 재판 결과를 지켜봤다. 당시 절도범 중 1명인 A씨는 “불상을 훔쳐 온 혐의로 징역 3년을 살았다”며 “적절한 보상을 받고 불상을 부석사에 돌려주려고 했지만, 공범 한 명이 ‘절대 주면 안 된다’고 팔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가에서 이 불상을 꼭 지켜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선고 이후 부석사 측 변호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부석사와 현재의 부석사가 동일하다고 인정될만한 입증 자료를 이미 재판부에 여러 차례 제출했다”면서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 소재 사찰인 간논지의 다나카 세쓰료 주지승이 지난해 6월 15일 대전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강정의 기자

일본 간논지에 있던 이 불상은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범들이 훔쳐 국내로 반입됐다.

서산 부석사는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1330년쯤 서주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내용의 문서(결연문)를 토대로 왜구에게 약탈당한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부석사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재판이 시작된 후 지난해부터는 간논지 측도 피고 측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나서 불상 소유권을 주장했다. 지난해 6월15일 항소심에는 일본 사찰 관계자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간논지를 창설한 종관이 1527년 조선에서 일본으로 돌아올 때 불상을 양도받아 가지고 들어왔다는 게 일본 측 주장이다.

간논지 측은 “1953년 1월26일 간논지가 법인으로 설립돼 도난 피해가 발생한 2012년 10월까지 불상을 점유하고 있었으므로 점유 취득 시효가 성립된다”며 “만약 불상이 탈취됐다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일본 민법에서는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일정 기간 점유한 경우 시효 취득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석사 측은 “불상은 왜구가 약탈해 가져갔고, 자신들의 소유가 아닌 걸 알면서도 점유하는 ‘악의의 무단 점유’를 한 경우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점유 취득 시효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종관’이라는 사람이 조선에서 불상을 적법하게 취득해 관음사에 안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간논지 측이 적법하게 들여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어떠한 증거 자료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일본 측이 한국에 반환을 요청하는 불상은 높이 50.5㎝, 무게 38.6㎏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이 불상은 현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