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범 거쳐 귀국한 기구한 ‘고려 불상’…도로 일본 가나?

최예린 2023. 2. 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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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왜구 약탈 인정하면서도
1심 뒤집고 일본사찰 소유권 인정
“정부가 불상 반환 다뤄야” 권고
부석사쪽 불복, 대법 상고키로
서산 부석사 관세음보살좌상 모습. 연합뉴스

절도범 손을 거쳐 국내로 돌아온 고려 불상의 소유권 소송에서 2심 재판부가 “우리 사찰 것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불상이 일본 쓰시마에서 국내로 반입된지 11년 만이다.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낸 한국 사찰 쪽은 대법원 상고를 예고했다.

대전고법 민사1부(재판장 박선준)은 1일 ‘서산 부석사 관세음보살좌상’에 대한 인도 청구소송에서 “원고(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가 해당 불상(서산 부석사 관세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가 애초 불상의 주인인 것은 맞지만, 지금의 서산 부석사는 과거 서주 부석사와 같은 사찰로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고려 말 잦은 왜구의 침략으로 인한 서주 지역의 피해 등을 고려할 때 1330년 존재했던 서주 부석사의 인적·물적 요소가 지금의 서산 부석사에 이르기까지 동일·연속성을 갖고 유지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다고 볼만한 상당한 정황이 있다”면서도 “(일본) 관음사가 법인으로 성립된 1953년부터 20년간 이 불상을 점유했기 때문에 취득시효는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1일 오후 ‘서산 부석사 관세음보살좌상 인도 청구소송’의 2심 재판이 끝난 뒤 대전고법 안에서 충남 서산 부석사 쪽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문제의 관세음보살좌상은 높이 50.5㎝, 무게 38.6㎏로 14세기 고려시대 때 제작됐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결연문에 ‘천력 3년(1330년) 2월 불상을 만들어 고려 서주(서산의 옛 명칭) 부석사에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국내 학계에서는 ‘서산 부석사 관세음보살좌상’으로 불렸다. 서산에 있던 불상이 일본 쓰시마의 관음사에 봉안된 것은 1527년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이 어떻게 쓰시마까지 갔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불상이 부석사에 봉안된 뒤 서산 지역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다는 점, 관음사로 간 불상 안에 복장물이 그대로 들어 있으나 어떻게 옮기게 됐는지를 적은 이안문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약탈된 뒤 일본으로 흘러간 불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이 불상이 한국으로 다시 온 건 2012년 10월이다. 절도단이 관음사에서 불상으로 훔쳤고 부산항을 통해 국내로 들여왔다. 그해 12월 대전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의해 절도범들이 붙잡히며 압수된 불상이 대전까지 오게 됐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500년 만에 돌아온 불상의 거취’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충남 서산 부석사 신도들과 주민들은 ‘관세음보살좌상 제자리 봉안위원회’를 만들어 불상 환수 운동을 시작했고, 2013년 2월 대전지법이 부석사가 낸 반환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며 일단 한국에 남게 됐다. 2016년 2월로 가처분 기간이 끝나자 부석사는 그해 3월 대전지법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관세음보살좌상 인도 청구소송’을 냈다.

2017년 1월 대전지법은 “불상을 부석사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법원은 “이 불상은 서산 부석사의 소유로 넉넉히 추정할 수 있고, 과거에 증여나 매매 등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의 방법으로 일본의 관음사로 운반돼 봉안됐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이 나온 뒤에도 논란은 여전했다. 일본 쓰시마시의회는 불상 반환 결의문을 채택했고, 일본의 관방장관, 문부과학상 등이 한-일 장관회담 때 불상 반환 요청을 하기도 했다. 국내 여론도 ‘불상은 애초 우리 것’이란 주장과 ‘훔쳐 온 물건이기 때문에 관음사에 돌려주는 것이 맞는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1970년 유네스코 총회가 채택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등에 대한 협약’에 따르면 불법 반출된 문화재는 본래 소장처가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17년 3월부터 시작된 2심의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부석사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원고의 인도 청구를 기각하는 것과 별개로, 대한민국 정부는 문화재 보호를 위한 국제법적 이념과 문화재 환수에 관한 협약 등의 취지를 고려해 이 불상의 반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며 한국 정부에 공을 넘겼다.

재판이 끝난 뒤 부석사 쪽은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서산의 부석사가 같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재판부는 다른 법리를 갖고 판단의 이유를 설명했어야 한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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