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28년 전 이건희의 위기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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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리펑(李鵬) 총리를 만난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일본은 이미 경제 대국이 됐고 중국도 지도부가 앞장서 경제 발전을 목표로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한국의 행정과 정치는 규제와 권위주의라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 회장은 자신의 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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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리펑(李鵬) 총리를 만난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일본은 이미 경제 대국이 됐고 중국도 지도부가 앞장서 경제 발전을 목표로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한국의 행정과 정치는 규제와 권위주의라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 회장은 자신의 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토로했다. 대화 도중 장 주석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전문 용어를 구사해가며 연구개발비·교육비 등을 꼼꼼히 물어봤다고 한다. 이 회장은 “앞으로 행정은 서비스로 바뀔 것인데도 각종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고, 정치는 미래 비전과 큰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도 소모적 정쟁에 쏠려 있다”며 “이런 상태로 21세기를 어떻게 맞이할지 눈앞이 캄캄했다”고 밝혔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에 쏟아낸 것이 바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베이징 발언’이었다.
이 회장은 “지금은 정부(정치), 기업, 국민이 삼위일체로 경쟁하는 국가 경쟁력의 시대”라는 점을 에세이 곳곳에서 강조했다. 정부와 정치, 기업, 국민이 얼마나 잘 뭉치느냐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좌우된다는 이 회장의 식견과 예지력은 28년이 지나도 탄복할 만하다. 우리는 현재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첨단 산업 지원과 기업 유치에 나라의 명운을 거는 이른바 경제안보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가 곧 국가의 보호막이며 기업은 국가의 미래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지방 정부·의회들은 각종 친기업 정책을 통해 한국 등 외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 부활을 목표로 대기업들의 연합체인 라피더스에 700억 엔을 지원하기로 했고 앞으로도 추가 자금을 대기로 했다. 대만 정부는 TSMC와 사실상 한몸이다. 대만의 택시 기사들도 TSMC를 위해 반도체 부품이나 화학 약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이를 사회공헌이라고 자부심을 느낀다니 세계 반도체 산업의 게임체인저 TSMC의 부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지난 20, 30년간 우리 기업은 생존의 몸부림과 시행착오 끝에 1류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의 질적 수준은 여전히 글로벌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한국의 규제 환경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조사 대상 63개국 중 48위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 종합 순위는 23위에서 27위로 떨어졌다. 글로벌 현주소를 보지 못한 채 우물 안에 갇혀 소모적 정쟁과 갈등만 반복하는 분열의 정치는 28년 전보다 심해졌다. 반기업 정서와 규제 양산의 주범도 따지고 보면 국회다. 원고지로 채 20장이 되지 않는 다수당(더불어민주당)의 경제 분야 강령에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9회, ‘경제민주화’는 3회, ‘분배’는 3회, ‘재벌개혁’도 1회 사용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계묘년(癸卯年) ‘퍼펙트 스톰’의 위기감을 우리 기업만 느껴서는 곤란하다. 지금은 우리 기업의 실패가 곧 대한민국의 실패라는 위기의식으로 모두 똘똘 뭉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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