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펠레가 '축구황제'라 불리는 이유, 불멸의 기록들

최희진 기자 2023. 2. 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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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월드컵 3회 우승한 펠레
펠레의 사망 소식을 보도한 영국 신문들


지난해 12월 30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축구황제 펠레는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현역 최고인 리오넬 메시를 비롯해 음바페, 호날두 등 슈퍼스타들도 한목소리로 펠레의 사망을 애도했습니다. 그렇다면 펠레는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을까요? 펠레가 이룩한 업적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래서 펠레의 월드컵 활약상에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펠레는 첫 출전한 월드컵부터 최연소 득점, 최연소 해트트릭, 최연소 우승 등 숱하게 많은 대기록들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4차례 월드컵에 출전해서 3차례나 우승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월드컵에서 3회 우승한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 이 기록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17살 펠레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월드컵 데뷔

웨일스전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고 감격에 겨워하는 펠레(제일 왼쪽)

펠레의 월드컵 데뷔 무대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이었습니다. 1940년생인 펠레는 당시 만 17세였습니다. 펠레는 웨일스와 8강전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의 1대 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7세 239일의 나이로 골을 넣어 월드컵 역대 최연소 득점자가 됐습니다. 이 기록은 65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안 깨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준결승에서는 해트트릭을 작성해 이 부문 역시 최연소(17세 244일) 기록을 작성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쥐스트 퐁텐이 있었습니다. 퐁텐은 이 대회에서 13골(월드컵 한 대회 최다 득점 기록)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13골은 월드컵 한 대회 최다 득점 기록으로 역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이 펠레의 해트트릭 활약을 앞세워 프랑스를 5대 2로 대파했습니다. 홈팀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 펠레는 17세 249일로 출전부터 '최연소' 기록이었고, 멀티 골로 '월드컵 결승전 최연소 득점 기록'도 세우며 '최연소 우승' 기록까지 휩쓸었습니다. 브라질은 스웨덴에 5대 2 대승을 거두고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펠레는 이 대회에서 총 6골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월드컵 데뷔를 했습니다. 펠레의 골들을 보면 17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여유 있고 침착하게 상대 선수들을 농락하다시피 했습니다.

1958년 월드컵 우승 직후 눈물 흘리는 17살 펠레

그래도 우승 직후 브라질팀 선배들의 품에 안긴 채 감격에 겨워 펑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10대 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

펠레의 부상 아웃...그래도 브라질은 월드컵 2연패 달성


4년 뒤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펠레는 멕시코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골을 넣으며 산뜻하게 출발했습니다. 상대 선수 4명을 제치고 돌파한 뒤 멋진 골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체코와 2차전에서 부상을 당해 남은 경기에 모두 결장했습니다. 펠레의 공백에도 브라질은 충분히 강했습니다. 가린샤, 바바, 아마릴도 등의 활약을 앞세워 승승장구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한 겁니다.

펠레와 브라질에게 악몽 같았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출전 위해 영국 공항에 도착한 펠레

충격의 조별리그 탈락 직후 실망하며 퇴장하는 펠레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브라질은 조별리그에서 불가리아, 헝가리, 포르투갈과 같은 조에 속했습니다. 불가리아와 1차전에서 펠레는 선제골을 터뜨리며 2대 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은 헝가리와 2차전에서 3대 1로 덜미를 잡혔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과 3차전에서도 3대 1로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의 충격을 맛봤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에는 흑표범이라 불린 전설의 공격수 에우제비오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 대회 8강전에서 북한에 5대 3 역전승을 거뒀는데, 전반에 3골을 먼저 내준 뒤 내리 5골을 뽑는 대역전극이었습니다. 에우제비오는 이 경기에서 무려 4골을 몰아쳤습니다. 결국 포르투갈은 이 대회에서 3위에 올랐는데 지금까지도 포르투갈의 역대 최고 성적입니다.


포르투갈전에서 상대 선수의 거친 태클에 부상당한 펠레

브라질뿐만 아니라 펠레에게도 이 대회는 악몽 같았습니다. 펠레는 대회 내내 상대 선수들의 집중 태클에 시달렸습니다. 포르투갈전에서도 과격한 태클에 부상을 당했습니다. 펠레의 부상으로 선수 보호 논란이 크게 불거졌고, 결국 다음 대회인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선수 교체 제도와 레드·옐로카드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팀을 이끌었던 펠레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 (앞줄 왼쪽부터 자일징요, 히벨리노, 토스타오, 펠레)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던 브라질 대표팀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펠레, 자일징요, 히벨리노, 토스타오 등 4총사의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6경기를 모두 승리했습니다. 6전 전승의 완벽한 우승이었습니다.

브라질은 조별리그에서 체코, 잉글랜드, 루마니아와 같은 조였습니다. 체코와 1차전에서 4대 1 승리를 거두고 순조롭게 출발했습니다. 전반 11분 만에 체코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이후 내리 4골을 넣으며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펠레는 후반 14분 역전 골을 터뜨렸습니다. 브라질은 '디펜딩 챔피언' 잉글랜드와 2차전에서 1대 0으로 이겼는데 이 경기는 그야말로 명승부였습니다. 후반 14분 펠레의 어시스트를 받은 자일징요가 결승 골을 터뜨렸습니다.

펠레는 이 경기 전반전에 자일징요의 크로스를 받아 그림 같은 헤더로 연결했는데, 잉글랜드 고든 뱅크스 골키퍼의 그림 같은 선방에 막혔습니다.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선방으로 꼽히는 장면입니다. 브라질은 루마니아와 3차전도 3대 2로 이겼습니다. 펠레는 이 경기에서 그림 같은 프리킥 골을 비롯해 2골을 넣었습니다. 프리킥은 동료 선수가 상대 수비벽 사이로 들어가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린 그 좁은 틈새로 정확하게 차 넣어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조별리그에서 3승을 기록한 브라질은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습니다. 당시에는 월드컵에 16개국이 출전했기 때문에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바로 8강이었습니다.

브라질은 8강에서 전설의 스트라이커 쿠비야스가 활약했던 페루에 4대 2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4강에서 우루과이를 만났습니다. 당시 우루과이와의 경기는 브라질로서는 큰 의미가 있는 설욕전이었습니다. 20년 전인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에서 우루과이에 충격적인 2대 1 역전패를 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불리는 경기였습니다.

당시 마라카낭 경기장에 무려 20만 관중이 운집해 브라질의 우승을 염원했는데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겁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감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 브라질 축구 팬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에서 우루과이를 만났을 때 설욕을 벼르고 별렀는데 이번에도 전반 19분 우루과이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순간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브라질은 이후 3골을 몰아치며 3대 1 역전승을 거두고 설욕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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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진 기자chnove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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