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발’로 곱씹은 ‘안주발’

박동미 기자 2023. 2. 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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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라면 먹을래요?"는 개봉 20년이 넘어도 회자된다.

라면을 먹고, 연인이 되고, 지금은 부부가 된 소설가 정진영(43·사진)과 배우 박준면이다.

치킨, 짝태, 홍합탕, 육포, 번데기, 족발, 훈제연어, 곱창, 명란젓, 그리고 '그 라면'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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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소설가’ 정진영의 산문집 ‘안주잡설’
“아내 박준면씨 만나게 해준 라면이 최고 안주죠”
라면·배추전 등 인생 담긴 30가지 이야기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라면 먹을래요?”는 개봉 20년이 넘어도 회자된다. 상대방을 유혹할 때 쓰는 말이라는데, 현실에서 누가 정말 이 대사를 읊을까. 진짜 들어본 사람은 있나 싶은데, 여기 있다. 라면을 먹고, 연인이 되고, 지금은 부부가 된 소설가 정진영(43·사진)과 배우 박준면이다. 원전 비리와 언론사의 실상 등을 소설로 쓰며 ‘사회파 소설가’로 불리는 정 작가가 최근 펴낸 산문집 ‘안주잡설’(서랍의날씨)에 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금요? 술 마시고 있어요!” 몇 년 전 기자를 그만두고 전업 소설가로 나선 정 작가는 전화를 걸 때마다 ‘술자리’에 있다며 겸연쩍어했다. 책에서는 소설가에 대해 “월급쟁이로 사는 일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고, 소설 쓰기는 “가성비가 엉망인 작업”이라고 하소연과 푸념을 늘어놓더니, 실상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여유가 차고도 넘친다. 정 작가는 “힘드니까 마신다”며 항변했다. 그는 ‘안주잡설’로 머리를 식히며 ‘침묵주의보’ ‘젠가’를 잇는 ‘조직 3부작’의 마지막(가제 ‘정치인’)을 썼다. 소설 집필 중 휴식으로 번역을 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는 대목. 출간 전 드라마 판권이 팔렸는데, 이번엔 각본까지 맡았다. “술과 안주 벗 삼아 버티며 삽니다. 그동안 먹고 마신 것들을 상상하니까, 소설 집필 스트레스도 풀리더라고요.”

치킨, 짝태, 홍합탕, 육포, 번데기, 족발, 훈제연어, 곱창, 명란젓, 그리고 ‘그 라면’에 이르기까지. 책은 정 작가가 좋아하고 즐기는 안주 30가지에 대한 ‘썰’을 푼다. 아내를 처음 만난 날 “유난히 매콤하고 고소했던” 해장 라면, 어린 시절 비가 오면 어머니가 부쳐 주던 배추전,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처럼 호불호 없는 맛의 명란젓, 소주를 밀반입하게 만든 어느 레스토랑의 훈제연어, 안주로 ‘이상형 월드컵’을 했더니 최종 우승은 민물장어였다는 등 작가는 각 안주의 맛과 장점을 상세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추억과 기억, 일상과 경험까지 엮어 맛있게 버무린다. ‘술꾼’ 아니라도 군침이 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주를 맛있게 먹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정 작가. 그가 종이 위에 차려준 술상을 하나씩 받을 때마다, ‘인간 정진영’에도 한발 짝 가까워진다. 바닷장어보다 기름지고 맛있는 안주인 민물장어는 고 신해철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을 흐르게 하고, 한창 음악에 빠져 지낸 작가의 10대 시절로 헤엄쳐 간다. “그 시절에 나는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던 조용한 ‘관종’이었다”고 고백한 작가는 이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남의 눈치 보거나 남의 평가에 휘둘릴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안주도 남이 맛있다고 하니까 그에 맞춰 취향을 바꿀 필요 없어요. 혀에 거짓말하지 맙시다. 내 입에 맛있는 게 정답이라고요.” 역시, 기-승-전 ‘안주’.

‘최고의 안주’를 물었다. 눈치챘겠으나, 바로 ‘라면’이다. 아내와의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맛있는 안주는 많지만 라면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먹을 안주는 앞으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최고의 술친구인 아내, 박준면 배우가 추천사를 썼다. 박 배우는 정 작가가 끓여 준 라면을 떠올리며 “살아오면서 먹은 라면 중 가장 포근했다”고 회고한다. “이 사람 참 담백하다”는 사랑의 말과 함께. 정 작가도 답한다. “너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덜 외로울 것이다. 고맙다”고. 이런, 아내가 아닌 라면이 대상이다. “아, 이번 책은 안주가 주인공이니까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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