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가스료 동결이 ‘폭탄’ 키워… 난방비 대란이야말로 규제의 역설”[현안 인터뷰]

김윤희 기자 2023. 2. 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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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규제개혁위원장 역임했던 최병선 서울대 명예교수
언젠가는 올려야 하는 요금을
정부 힘으로 억누른 건 무책임
다 시장 이기겠다고 벌인 일들
가격 현실화해 빨리 대처하고
지원책 나서야 진짜 강한 정부
반기업정서 강하고 시장 불신
한국, OECD서 6번째 규제강국
불합리 규제로 연 300조 소실
규제 비용편익분석이 핵심인데
개혁 위한 예산과 인력 태부족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달 18일 문화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있을 수 없다”면서 정부 개입을 앞세우는 ‘큰 정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윤슬 기자

규제개혁위원장을 역임한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최근에 벌어진 난방비 폭탄, 전기료 대란은 강한 정부의 역설”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정부가 가스비를 2년간 동결했다가 대선 끝난 다음에 올렸다. 탈원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기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결국은 전기요금도 시한폭탄이 되고 말았다”며 “정부가 시장을 이기겠다고 벌인 일들이지만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출간한 저서 ‘규제 vs 시장’에서도 정부 개입을 앞세우는 ‘큰 정부’에 대한 환상, 시장에 대한 악의적인 프레임을 깨는 데 주력했다. 큰 정부가 정상적인 시장 작동을 막아서 생기는 여러 부작용과 역효과를 낱낱이 짚었다. 최 교수와의 대면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문화일보 사옥에서 진행했고, 이후 전화 인터뷰를 통해 보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난방비와 전기료 폭탄 문제도 규제와 관련이 있나.

“난방비·전기료 문제야말로 강한 정부, 강한 규제의 역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언젠가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요금을 정부의 힘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믿고 인상하지 않은 정부가 과연 강한 정부이고 옳은 일을 한 것인가. 시장에서 생겨난 문제를 시장에 맡겨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국민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현실화해 경제행위자들이 제각기 더 빠르고 현명하게 새로운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취약층에 대한 지원책 등을 강구하는 정부가 진짜 강한 정부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시장에 대한 악의적인 프레임이 많다. ‘시장’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말이 무엇인가. 부익부 빈익빈, 약육강식, 착취, 비윤리, 비정과 냉혹 이런 말들 아닌가. 그러나 시장은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 시장은 각자의 필요를 연결해주고,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이룰 수 있게 해주고 그로써 서로가 이득을 보도록 도울 뿐이다. 이 일을 잘하면 잘 돌아가는 시장이다. 우리가 비난해야 할 대상은 시장에서 못된 일을 하는 악의적인 사람, 기업들이지 시장이 아니다.”

―시장에선 주로 대기업, 힘 있는 자들이 혜택을 본다는 주장도 있다.

“시장에서는 덩치가 크다고 힘이 세지 않다. 소비자에게 더 큰 만족을 주는 기업이 시장의 강자이다.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면 아무리 큰 기업도 하루아침에 도태되고 만다. 약자들이야말로 시장이 없으면 살아갈 길이 없다. 시장이 있기에 자기의 미미한 재주와 부지런함으로, 또 성실한 노력만으로 적은 돈을 벌어 자식들을 잘 키워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해 시행하는 ‘정의로워 보이는’ 규제가 아주 많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대표적이다. 그 규제의 효과는 어떻게 나타났나.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민 노동자들이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이런 규제를 하는 것인가.”

―독과점은 시장실패가 아닌가.

“오늘날 독과점은 거의 없다. 국경이 허물어진 개방사회에서 독과점은 있을 수 없다. 독과점 문제는 모두 정부가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전력사업은 왜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가. 정부가 법을 제정해 독점사업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통신회사도 3개사뿐이다. 다른 사업자에게는 허가를 안 내주기 때문에 이들이 독과점적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은 유독 규제가 심한 나라인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규제 강국으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상품시장규제지수(PMRI) 분석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OECD 38개 회원국 중 6번째로 규제가 강한 나라로 조사됐다.”

―규제를 세금에 비유했는데.

“규제는 숨겨진 세금(hidden tax)이다. 미국의 경우 의회의 요구에 따라 2년마다 규제로 인한 국민경제 비용을 계산해 보고하고 있는데 그 액수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0% 선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규제가 많고 규제 불합리성이 미국보다 훨씬 높으므로 GDP의 15% 선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2020년 기준으로 약 300조 원이 불합리한 규제로 해마다 소실된다는 말이다. 이를 우리나라 전체 인구로 나누면 국민 1인당 부담은 약 588만 원이다. 이렇게 큰돈이 규제로 인해 자기 주머니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한국이 규제 강국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시장에 대한 불신, 반기업정서가 유독 강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불신하니 관치 경제가 부득이하다. 경제 개발기에는 다소간 관치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정부가 원해서라기보다 국민이 요구해서 정부가 규제를 양산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본다.”

―역대 정부 중 규제개혁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나.

“김대중 정부 시절 기존 규제의 50%를 없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건수 상으로는 분명히 목표를 달성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개혁 의지가 강했고, 단기간에 상당한 인력과 예산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에도 모든 정부가 규제개혁을 외쳤다.

“말로만 규제개혁을 한다고 하면 무슨 소용인가? 김대중 정부 이후 규제개혁위원회의 위상과 힘은 약화됐다고 보는 게 맞는다. 대통령들은 규제개혁장관회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규제개혁추진단 등 별도의 기구를 신설하기도 하고, 규제개혁의 기치보다는 정치적 선전 효과를 노려 노동개혁, 교육개혁, 금융개혁 등을 앞세웠다. 이렇게 나가면 규제개혁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규제개혁 실패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예산과 인력의 절대 부족이다. 예컨대 규제의 비용편익분석이 규제개혁의 핵심 툴(tool)인데 형식적으로 운영될 뿐이다. 규제총량제든, 규제 하나를 만들려면 기존 규제를 하나 폐지해야 하는 OIOO(One-in, One-out) 제도든 규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할 능력이 없고 예산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규제개혁에도 돈이 드나.

“당연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개혁도 돈을 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규제개혁에 쓰는 예산은 어림잡아 400억~5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2020년 우리나라 규제비용이 300조 원이라고 할 때 이 비용을 5%만 줄인다고 해도 15조 원의 이득이 생긴다. 그런데 고작 400억~500억 원을 쓰는 건 말이 안 된다.”

―국회에서 쏟아지는 규제도 상당하다.

“수만 건에 달하는 의원입법 발의안 태반이 규제 관련이다. 엄격한 규제 심사를 피하려 의원입법 형태를 빌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행정부 규제 심사에 준하는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과거에 국회에 규제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운영한 적도 있다. 최근 국회에서 그런 논의가 일고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안전 규제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위험이야말로 규제의 어머니다. 규제는 사고를 먹고 자란다. 그런데 먼저 솔직히 인정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사고는 필연적으로 나게 돼 있다. 예견된 사고, 막을 수 있었던 사고는 없다. 사고는 항상 사각지대에서 난다. 항상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규제로 사고를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예방전략으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든, 이태원 참사든 그 시각 그 장소에서 그런 끔찍한 사고가 나리라고 정확하게 예견한 사람은 없다. 그저 막연하게 가능성을 예측했을 뿐이다. 위험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각종 사고와 위험 대처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선진국은 무조건 예방에 주력하기보다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는 면에서 우리보다 과감하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돌다리만 두드리고 앉아 있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하고 만다.”

김윤희·김유진 기자 worm@munhwa.com

■ 최병선 명예교수는

규제개혁 최고 권위자… 최근 저서에서 “시장 알아야 규제 보인다” 강조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정부 규제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 때였던 2008~2009년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전반적인 규제 실무를 들여다본 경력이 있다.

제18회 행정고시 출신인 그는 전라북도청과 상공부에서 근무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에다 규제 전공자로서의 연구·교육·규제개혁 실무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셈이다. 최 명예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규제 vs 시장’에서 “시장을 알아야 규제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공저 ‘민주주의는 만능인가’에선 다수결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 법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삼권분립 체제를 살폈다.

최 명예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한국의 1970~1980년대 경제정책 개혁 추진과정을 연구해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규제정책, 통상정책, 규제제도연구 등을 강의했다. 한국규제학회 창립을 주도해 초대회장(2002~2004년)을 지냈으며, 한국정책학회장(2004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2006~2008년) 등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정부규제론’(1992, 법문사)과 ‘시장경제와 규제개혁’(2002, FKI미디어), ‘규제의 역설’(2006, 삼성경제연구소), ‘국가운영시스템: 과제와 전략’(2008, 나남), ‘민주주의는 만능인가?’(2019, 가갸날) 등이 있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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