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는 벗더라도[편집실에서]

입력 2023. 2. 1. 08:05 수정 2023. 2. 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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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주간경향이 정성껏 마련한 ‘7첩반상’은 맛있게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조치 이후 두 번째로 맞는 명절이었습니다. 모처럼 보고팠던 분들 맘껏 만나고 가고팠던 곳 맘껏 누빈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내친김에 정부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규정까지 푼답니다. 요양병원, 의료기관, 약국, 대중교통수단 등 몇 군데 예외는 있지만 음식점, 사무실, 학교, 도서관, 백화점, 공연장 등 대부분의 실내에서 마스크가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 됐습니다. 답답한 건 둘째치고 마스크의 주원료인 폴리프로필렌이라는 게 땅속에서 썩기까지 45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눈만 뜨면 매일 하나씩 집어들고 집을 나서는 일상을 천년만년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합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 마스크는 결국 벗어야겠지요.

유념할 게 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우리 어땠습니까. 감기에 걸렸다고 점심 약속 미룰 수 있었습니까. 만나기 싫어하나 보다 오해 안 받으면 다행이었지요.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맘 놓고 연차는 쓸 수 있었습니까. 정신이 나약하다고 손가락질받았지요. 단체 회식 가서 찌개 덜어먹을 국자 달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쳐다봤습니까. 유별난 사람 취급했지요.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범죄자’ 아니면 ‘환자’라는 선입견도 강했습니다. 그게 부담스러워 콧물과 기침을 달고서도 좀처럼 마스크를 쓸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복병이 찾아왔습니다. 인류의 생활방식을 몰라보게 바꿔놓았습니다. 부러 더 큰 소리로 재채기를 하고 그걸 또 받아서 “시원하시겠습니다”라며 추임새를 넣던 모습은 까마득한 옛일이 됐습니다. 비말이 어디까지 퍼져갈지 적어도 서로 의식을 하게는 됐습니다. 불편함을 무릅쓰고서도 거의 한 명도 예외 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건, 인류 공통의 위기 앞에서 나만 잘해선 헤쳐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습니다. 3년여에 걸쳐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중세의 흑사병, 20세기 초반의 스페인독감과 견줍니다. 혹자는 희생자 규모 면에서 제1차·2차 대전을 뛰어넘는, 거의 제3차 세계대전 수준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지구가 앓는 몸살을, 지구가 보내는 신호를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재채기가 나오면 소매로 가리는 정도의 매너는 지킬 때 실내에서도 모두 안전하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습니다. 감기 정도는 병도 아니라는 식으로 업신여기면서 무지막지하게 달려온 사회의 비정상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열이 나면 알아서 마스크를 쓰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대중 밀집시설 출입은 자제해야겠지요. 몸이 보내는 경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찌 지구의 경고를 알아채고 연대해서 함께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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