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상 『야만의 겨울』 문미순 “시대의 화두 간병과 돌봄 문제 생각해보는 계기되길”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서울 중앙보훈병원 재활병동에서 75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간병을 오롯이 홀로 책임져야 했다. 간병인을 쓸 수 없는 처지에, 팬데믹까지 창궐하면서 가족 내의 교대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2020년 가을, 소설가 문미순은 한국 사회에서 간병 및 돌봄을 하는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걸 절감했다.
간병과 돌봄 문제를 다뤄봐야겠구나. 일기 형식으로 간병을 기록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처음에는 재활병동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단편으로 써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다 아는 이야기 같았다. 간병과 돌봄 관련 책자도 읽어나갔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돌봄 사각지대, 간병 살인, 영케어러 문제⋯.
그 사이 재활 병동에서 퇴원한 남편은 외래 치료를 다녔다. 남편이 통원 치료를 할 때면 병실 바깥에서 기다리며 작품을 생각했다. 이야기는 점점 커져갔고, 시놉시스도 계속 바뀌었다. 그러다가 극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이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고 엄마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문 작가는 이듬해 봄부터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3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한 그는 퇴고에 퇴고를 이어간 끝에 거의 2년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제19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야만의 겨울』 이야기다.
소설은 중년 여성 명주가 어느 날 간병 중이던 치매 엄마가 숨지자 미라로 만든 뒤 엄마 앞으로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때 같은 아파트에 살던 스물일곱 청년 준성 역시 뇌졸중을 앓던 아버지가 쓰러져 숨지는 사고를 겪는다. 준성은 명주의 설득과 도움으로 아버지 시신을 명주의 집에 모셔 놓은 뒤 실종 신고를 하게 된다. 진천 할아버지가 엄마를 찾고 딸 은진마저 돈을 노리고 접근해 오자 위기를 느낀 명주는 준성과 함께 비관적 현실에 대담한 반격을 도모하는데. 복지사각 지대에서 내팽개쳐 있던 명주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후벼 판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지 않겠어? 나라가 못해주니 우리가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세계문학상 심사위원단은 당선작에 대해 “병든 부모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은 돌볼 수조차 없는 두 이웃의 비극을 그리는 이 작품은 자연주의 소설의 현대적 계승인 동시에, 비관적 세계에 가하는 희망의 반격”이라며 “강력한 서스펜스가 작동하는 스릴러 소설인가 하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낭만적 소설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막다른 길 없는 명주와 준성의, 온종일 사건 같은 삶의 현장은 스스로 그들의 알리바이가 되어 준다”며 “‘야만의 겨울’을 다 읽은 지금도 그때 그 길과 그때 그 도착지를 잊을 수 없다”고 상찬했다.
2013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해왔고 2021년 소설집 『고양이 버스』로 심훈문학상까지 받은 소설가 문미순은 왜 『야만의 겨울』을 써야 했을까. 그의 작가적 미래는 어디를 향해 갈 것일까. 문 작가를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이번 장편을 쓰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지.
“명주와 준성이 서로에게 공감하게 해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소설 쓰기는 명주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준성이 이야기도 따로 만들어 냈지만, 두 사람이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도록 하는 접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어떤 만남이나 사건이 섬세하게 쌓이면서 그렇게 돼가야 해서 어려웠다.”
―주인공 명주와 준성 이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부모 시신을 미라로 만든 뒤 부모의 연금으로 생활해야 할 만큼 처절한 상황을 야만으로 봤다. 제목은 계속 바뀌었는데, 고치고 고치면서 이 제목까지 왔다.”
―기존 간병이나 돌봄을 다룬 소설과 다른 지점은.
“중요한 순간에 내리는 결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준성은 아버지가 죽고 외제차를 긁게 되면서 수천만 원을 내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이 아닌 자신의 삶을 끌어안고 앞으로 한발 더 내딛는다. 명주 역시 다소 비윤리적이라고 할 만큼 과감한 행동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한 발 더 나아간다. 기존 소설과 달리 주인공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는 모습이 다를 것이다.”
―몰입감과 속도감이 놀랍다는 평이 나오더라.
“준성의 경우 아슬아슬한 삶을 살면서 자꾸 더 좋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아 긴장감이 고조됐을 것이다. 특히 명주는 엄마의 시신을 미라로 만든 뒤 숨겨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기에 긴장이 이어진 것 같다. 더구나 진천 할아버지가 오면서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고, 딸 은진이 접근해오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됐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독자들은 다음에 어떻게 되지 하는 궁금증이 유발되지 않았을까.”
―독자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가.
“소설은 기본적으로 제가 간병과 돌봄 문제에 대해 느낀 것에서 출발했다. 간병과 돌봄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이다.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간병이나 돌봄 노동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희 집 아이들에게 작품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읽고 나서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잘 넘어간다고, 재미있다고 이야기해 주더라.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장편이라면 사람들이 잘 읽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첫 소설집에는 베이비시터나 마트 캐셔 등 힘들게 몸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그 문제의식에서 조금 더 확장됐다는 생각이 든다. 명주가 준성에게 연민을 갖고 힘들고 비루한 삶이지만, 그 삶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그려보고 싶었다.”
경기도 이천에서 나고 자란 여학생 문미순은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문화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주던 이천과 달리, 서울에선 한 학년이 무려 열네 개 반이나 됐고, 사람들 모두 너무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새 환경에서 그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은 책의 세계였다. 특히 처음 접한 헤르만 헤세의 책 『데미안』은 유년 시절의 세계관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천주교 집안에서 비교적 유복하고 포근하게 자란 저는 어떤 선한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라는 이분법에서 선한 세계에만 속해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데미안』을 읽으면서 뭔가 큰 균열이 왔던 것 같아요. 비로소 악한 세계에 대한 이해의 눈을 떴다고 할까요.”
헤세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곧 이어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어떤 위안 같은 것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 마음속에 어떤 씨앗 하나가 생겨났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책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를 주고 싶다는.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철학과로 진학한 그는 대학 4학년 시절 단편소설 「저승 가는 노잣돈」을 처음 썼다. 할머니 죽음을 통해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대학 교지에 실리기도 했다.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 소설을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떤 벽에 부딪치는 것 같아 한동안 소설을 포기했다. 그 사이 결혼해 대만에서 5년 정도 살았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육아에 매달렸다.
마흔 무렵, 개인 과외를 하면서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특히 송파문화원에서 『어제 울린 총소리』 등으로 유명한 유재용 작가(1936-2009)가 진행하던 소설 강의를 듣는 등 소설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7년.
“등단 직후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면서 돈이 많이 필요할 때여서 아이돌보미와 마트 캐셔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장을 오래 다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라. 일을 하면서 힘들어 작품에 힘을 전력으로 쏟지 못했다. 틈틈이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소설집은 어떤 작품이 담겨 있는지) 마트 캐셔나 베이비시터 등 제 경험이 담긴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주로 힘든 일을 하는 주변부 인물들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 삶을 버텨가려는 인물을 많은 그린 것 같다. 최저 시급 알바들을 하거나 심훈문학상을 받으면서 사회를 보는 눈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소설쓰기의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저는 인물을 통해 많은 것을 드러내 보이고자 인물에 중점을 둔다. 단편집에서도 그랬고, 이번 장편에서도 인물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인물을 잘 그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주변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관심이 가거나 특이한 사람이 있으면 메모를 한다. 소설을 구상할 때 필요한 인물이 있으면, 메모해 둔 인물을 데려다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변형하거나 새로 만든다.”
―꼭 쓰고 싶은 작품이나, 작가로서 포부가 있다면.
“처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할 때도 큰 꿈은 꾸지 않았던 것 같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전에는 과연 내가 신춘문예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당선된 뒤에도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꾸준히 써왔던 것 같다. 등단한 뒤 몇 년은 다소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조급함만 갖고 되는 게 아니구나, 공부가 쌓이고 쌓여서 나오는 거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제 나름대로 뚜벅뚜벅 걸어왔던 것 같다. 계속 읽고, 쓰고, 고치며. 첫 장편을 다 썼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나만의 속도로 계속 가면 되겠구나, 하는. 큰 포부를 갖기보다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담을 수 있는 소설, 당대의 소설을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역량으로 뚜벅뚜벅 쓰고 싶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쓰겠다.”
인터뷰 중간, 불현 듯 나무늘보가 떠올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차분히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만의 속도도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써나가겠다는 그의 다짐을 듣고 있노라면. 젊을 땐 감정 기복이 심했는데 지금은 외부 사건을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그의 감정 진단을 듣고 있노라면.
“오전 8시나 8시 반쯤 일어나, 간단히 체조하고, 신문을 읽은 뒤, 점심때까지 주로 글을 쓰거나 고치고, 오후에는 책이나 자료를 읽거나, 한 시간 정도 걷습니다. 특별한 취미나 기호는 없어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땐, 영화를 보죠.”
그런데 나무늘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최고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지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 중 하나인 아프리카 치타는 멸종위기동물 리스트 최상단에 올라 있는 반면, 시속이 300미터에 불과한 나무늘보는 상대적으로 번성하고 있으니까. 세상사 속도에 의해 좌우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근거일지 모르니까.
그 역시 우리 시대로, 자신의 삶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현실과 비의와 고통을 받아들인 뒤,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달콤하고 쌉쌀한 이야기로 빚어내고 있었다. 천천히, 멈추지 않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작가 문미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국문학 중심부로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멈추지 않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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