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막 퍼주는 가게

김해미 소설가 2023. 2.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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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네에 주민을 즐겁게 하는 가게가 하나 생겼다.

상호도 재미있는 '퍼주고 또 퍼주는 가게'.

이 가게는 약간의 흠이 있어 유통업체에서 선택받지 못한 농산물과 수산물을 생산자에게서 직접 구매하여 싼값에 우리와 연결해 주고 있다.

전국에 이런 가게가 더 많이 생겨서 우리들의 이웃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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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 소설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네에 주민을 즐겁게 하는 가게가 하나 생겼다. 상호도 재미있는 '퍼주고 또 퍼주는 가게'. 처음에는 과일과 채소를 주로 팔더니 차츰 젓갈과 생선도 들여와 거의 파격적이라 할 만큼 싼 가격으로 팔고 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혹여 뭐라도 살 것이 있나 해서 들르면 그땐 물건을 진열한다며 상대도 하지 않는다. 준비가 끝난 오전 9시가 되어야 손님을 받고, 오후 4시 반이 되면 그 가격에서 또 한 번 떨이로 판다. 어쩌다 시간이 맞는 날에 장을 볼라치면 횡재라도 한 것처럼 나는 마냥 기분이 좋다. 대신 깜빡 시간을 놓친 후에 가보면 이미 물건이 떨어져서 빈손으로 돌아서야 한다. 그날 들여놓은 상품은 뭐가 되었든 당일 완판하는 것이 이 집의 장사 원칙인 것 같다.

이 가게는 약간의 흠이 있어 유통업체에서 선택받지 못한 농산물과 수산물을 생산자에게서 직접 구매하여 싼값에 우리와 연결해 주고 있다. 요즘 같은 팍팍한 시기에 꼭 맞는 맞춤형 양심 가게인 셈이다. 때깔이 좋고 겉만 번드르 한 것이 반드시 좋은 상품이 아니란 것은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 원래 벌레는 맛난 과일과 채소를 기막히게 찾아내서 스며든다. 못난 자식이 오히려 효도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지난 여름,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하는 야채 가격 때문에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오이를 마음껏 사 먹지 못했다. 가을에는 무 하나 가격이 자그마치 5000원이나 했다. 덕분에 추석이 왔어도 감히 새 김치를 담글 생각을 못 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때 다행히도 이 가게를 만났기에 이나마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바로 엊그제, 오후 산책길 끝에 나는 운 좋게도 이 가게에서 생선을 세 종류나 샀다. 워낙 식구들이 생선을 좋아하는 데다 마침 마감 떨이 시간이어서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꼼꼼하게 살펴보니 생선의 크기가 평상시의 나라면 감히 넘보지 못할 거의 대왕급이다.

낙지는 바로 냉동실에 넣고 갈치와 아귀는 소금 간을 적당히 해서 재워두었다. 다음 날 아침, 햇볕에 꾸들꾸들하게 말려서 냉동실에 쟁여 놓으면 몇 달은 안심이다. 남겨놓은 갈치 한 마리로 갈치조림을 만들며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부럽지 않았다. 당분간 반찬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소시민의 시간. 전국에 이런 가게가 더 많이 생겨서 우리들의 이웃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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