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자연과 재밍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2023. 2.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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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인류의 주거는 동굴에서 시작해 자연과 동식물로부터 얻은 다양한 영감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흰 개미집과 벌집이 대표적이다. 호주와 아프리카 흰개미집의 높이는 5m 정도에 달하는데, 이곳에서 여왕개미 한 마리와 200만 마리의 개미들이 공동생활을 한다. 개미들은 나뭇조각과 흙, 모래, 개미침샘의 침을 접착제로 사용해 아파트 4층 높이까지 개미집을 쌓아 올리기도 한다. 흰개미집은 별도의 에너지 사용 없이 자연의 온도차를 활용해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친환경건축이기도 하다. 2006년 개장한 런던의 큐가든과 멜버른 시의회 청사가 흰개미집의 과학적 원리를 활용한 대표적 건축물이다.

벌집은 또 어떠한가. 벌집은 육각형을 이용하면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힘도 고르게 분산시킬 수 있는 가장 안정된 구조다. 무려 벌집 무게의 30배에 달하는 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다. 일명 허니컴(Honeycomb)구조라고도 하는 벌집구조는 비행기와 F1레이싱 자동차의 동체 및 우리가 자주 보는 택배상자의 골판지 단면도 벌집 형태다. 2019년 뉴욕에 건축한 베슬이 유명하다. 높이 46m 전망대의 2500개의 계단이 허니컴을 구성해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흰개미와 벌 이외 인간처럼 집을 짓는 동물이 있다. 바로 새다. 새는 가장 건축적으로 집을 잘 짓는다. 먼저 거미줄과 나뭇잎, 나뭇가지 등의 재료를 선택하고 나무 위로, 물풀 사이로, 땅 위로할지를 정해 외적에게서 알과 새끼를 지키기 위해 집을 짓는다.

그 중에서도 까치집이 압권이다. 까치는 나무 위의 가지 사이에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쌓기 시작한다.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뭇가지가 서로 끼여 밀착돼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쌓는다. 그러면 마침내 어지간한 충격에도 꿈쩍도 않는 둥지가 완성된다. 이런 현상을 과학적으로는 입자끼임 효과라 한다.

출퇴근 시간 만원 지하철의 입구 쪽에 꽉 찬 승객들이 지하철의 감속과 가속에 따라 어느 임계에 도달하면 승객들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 즉 한 명이 승객이 움직이면 전체의 승객이 움직이는 상태로 되는 것이 바로 재밍 상태다. 재밍 상태는 해변의 가늘고 고운 모래가 압착돼 단단한 활주로의 역할을 하는 나폴리 해변과 백령도 해변의 천연비행장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건축물을 지을 때 지반을 보강하는 공법에 응용되기도 한다.

국보 31호인 첨성대의 석재 사이사이의 골재들이 서로 맞물림 효과를 발휘해 2016년 규모 5.8의 경주지진에도 끄떡 없었다. 우리나라의 석탑들도 재밍 효과를 이용했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랜 석탑인 국보 11호 익산미륵사지석탑은 수많은 돌을 깎아 끼워 세워졌다. 모든 부재가 서로 맞물려있어 어느 한 부분이 어그러지면 곧 무너지는 재밍 상태를 이용한 것이다.

까치집과 같이 새둥지를 모방해 만든 현대 건축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린 메인 스타디움인 냐오차오(鳥巢)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더타임즈가 선정한 '세계10대 건축 프로젝트' 중에서도 최고의 프로젝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새둥지 나뭇가지를 대신 강철 부재를 사용해 서로 얽히고 설키게 만든 건축물이다. 시공 당시 내진설계 등의 안전문제가 거론됐으나 지진엔 문제가 없다고 판명이 났다. 길이 333m, 폭 220m, 높이 70m 규모의 스타디움은 시공 당시 전 세계 강철 부재의 값을 폭등시켰을 정도로 많은 양의 강철이 사용됐다. 2010년 스웨덴의 새둥지 객실은 목재를 사용해 높이 6m의 위치에 높이 4m의 새둥지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6m 높이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4인이 숙박할 수 있는 객실이다. 아프리카 케냐의 새둥지호텔은 목재와 태양열을 이용한 객실이다. 새둥지 객실에서 노을 지는 광야의 야생동물과 밤이면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는 숙박객의 기분은 어떨까. 이래저래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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