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 약자엔 ‘없고’ 프랑스엔 ‘있는 것’
■ ‘노조 조직률’ 언급한 대통령…거기까지였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1년 기준 14%다. 20년 전엔 12%였다. 수십 년째 정체 수준이다. 특히 30명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하다. 지난달 이 같은 노조 조직 현황을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 노조가 노동 약자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노조 조직률에 관심을 두고 관련 발언을 공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노동 약자의 노조 조직률을 끌어올릴 방안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구체적 수단은 고용부가 설명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고용부가 이달 초 새해 업무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관련 내용은 없었다. 대통령실에서 추가 언급이 나오지도 않았다. 노동 약자의 ‘무노조 현실’이 기존 노조의 대표성을 비판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데 그친 셈이다.
노조 조직률 문제는 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밝힌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맞물려 있다. 우리 노동시장은 ‘정규직·대기업 일자리’와 ‘중소기업·비정규직 일자리’로 나뉘고 단절돼 있다. 두 노동시장은 임금, 고용안전성 등의 측면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그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중소업체의 낮은 노조 조직률은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왜 그런지, 대안은 없는지 살펴본다.
■ 노조가 있어야 임금이 오른다
사업장에 노조가 있는지는 근로조건 개선에 중요한 변수다. 노조가 있으면 노사 간 힘겨루기, 즉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 등 근로조건이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시장 임금보다 높게 임금 수준을 끌어올린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그렇다. 이를 ‘노조의 임금효과’라고 한다.
2019년 학술지 <동향과 전망>에 발표된 ‘근로자의 결합노동시장지위가 임금 분포에 미친 효과’ 논문을 보자. 같은 중소기업 정규직이더라도 노조 유무에 따라 임금 차이가 확연했다. 노조가 있는 곳은 한 달 임금이 421만 9천 원이었다. 반면 노조가 없는 곳은 291만 2천 원이었다. 유노조 사업장의 69% 수준밖에 안 됐다.
2016년에 나온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 ‘노동조합이 임금분배에 미치는 영향(1987~2016년)’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간 수준의 임금(100분위 중 60분위)을 받는 노동자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업장에 노조가 있는 노동자가 없는 노동자보다 임금을 9.8% 더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 단체협약 적용률 OECD 꼴찌 수준…임금 불평등↑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이 같은 노조 임금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 30~99명 사업장은 노조 조직률이 1.6%, 30명 미만은 0.2%다. 사실상 노조가 없고, 단체협약도 없다. 이들 사업장에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하거나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이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2018년 기준 14.8%에 불과하다. 노동자 10명 중 1명 정도만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조건이 결정되고 있다는 얘기다. 29개 나라 중 뒤에서 7번째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터키, 멕시코 등이다. 유럽 선진국은 대부분 OECD 평균(32.1%)보다 높았다.
낮은 단체협약 적용률은 임금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8년 발표한 ‘세계임금보고서’에서 “협약적용률이 높을수록 임금 불평등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헝가리, 폴란드처럼 40% 이하인 나라는 임금 불평등이 컸고, 프랑스와 스웨덴 등 80% 이상인 국가는 작았다. 한국은 아르헨티나, 태국과 함께 임금 불평등이 가장 많이 증가한 국가로 지적됐다.
사업장에 호봉제 등 임금제도가 있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을 수 있다. 호봉제에선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업체엔 임금제도조차 없는 경우도 흔한 게 현실이다. 조선업 하청업체들이 대표적인 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엔 근속연수나 숙련 정도에 따라 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체계가 없었다. 10년 넘게 일한 숙련공도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 데 그친 배경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지난해 5년 간 임금이 30% 깎였다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파업을 했다.
■ 프랑스 단체협약 적용률은 98%…비결은?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큰 상황에서 단체교섭 제도는 그 격차를 줄이기보다 키우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엔 노조가 있고, 중소기업엔 없기 때문이다.
대안은 없을까? 주목할 만한 사례가 프랑스다. 프랑스의 노조 조직률은 2016년 기준 10.8%다. 한국보다 낮다. 그런데 단체협약 적용률은 98%에 이른다. 노동자 10명 중 1명만 노조에 가입했지만, 10명 모두 단체협약을 적용받고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는 ‘산업별 단체협약’이 노사관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2014년 발표된 ‘프랑스에서는 왜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가’ 논문을 보면 프랑스는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전체 노동자의 90%가 산업 수준의 협약을 적용받고 있다. 특정 산업의 여러 사업자가 가입한 사업자 단체가 초기업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협약은 해당 사업자 단체에 가입한 사용자들과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노조 유무나 노조 가입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이유다.
국내에선 보건의료와 사무금융 등 일부 업종에서 낮은 수준이지만 산업별 교섭이 이뤄지고 있다. 금속 등 제조업에선 사용자 단체가 소극적이다. 프랑스 사용자들은 산별교섭을 선호했다. “동종 산업 내 임금과 근로조건의 최저 수준을 정해 노동력을 규정 이하 임금이나 근로조건으로 공급받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회적 덤핑(dumping social)’을 막고, 사용자 간의 경쟁 조건을 규율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프랑스에서는 왜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가’)
프랑스의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또 다른 배경은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다. 프랑스는 단체협약의 효력을 노사 한쪽의 요구나 정부의 주도로 해당 산업 또는 지역 전체에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협약 체결권은 대표성을 지닌 노사 단체에만 부여했다. 프랑스는 법을 통해 노사 단체의 대표성 획득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 단체교섭 효력 확장, 3년 간 1건도 없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에도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가 있긴 하다. 노조법 36조에는 하나의 지역에서 동종 근로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경우, 노사의 신청이나 행정관청 직권으로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그 지역에서 일하는 다른 동종 근로자에 대해서도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산업 단위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국한돼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고용노동부가 우원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지역 단위 효력 확장이 적용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행정관청이 직권으로 노동위원회 의결을 요청한 사례도 한 건뿐이었다. 이마저 노동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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