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무서워… 회사가 지옥” [死무실로 출근합니다]

이호준 기자 2023. 2.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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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괴롭힘 금지’ 3년, 유형 한층 다양... 김영진 의원 “구체적 데이터 관리 필요”

최근 경기도가 산하 공공기관인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을 향해 안대성 원장에 대한 해임을 요구, 스스로 사퇴했다. 도는 원장이 위법·부당한 업무 지시로 근로기준법과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전북소방본부에서도 간부 직원이 부하에게 폭언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 중징계 결정이 내려졌다. 현행법은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누구든지’ 사용자에게 ‘괴롭힘 사실’을 신고할 수 있을까. 경기일보 K-ECO팀이 포스트코로나 시대 ‘일터 내 갑(甲)질’을 뜯어봤다. 편집자주

연합뉴스

■ 死무실로 출근합니다 - 2023 직장 갑질 실태 ① 코로나 시대, 신종 甲질 등장

#1. ‘그 날’도 경기도내 위치한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그의 귀에 “정신 나간 배신자” 소리가 꽂혔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채용된 신입 직원이었던 그는 기관장으로부터 “이력서 사진이 예뻐서 실물이 궁금했다. 얼굴 보고 뽑았으니 마스크를 벗어봐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보였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는 근무 내내 “예전에는 예쁘고 날씬했는데… 내가 결혼만 안 했으면 너 어떻게 해보려고 했어”, “나랑 연애하자”, “더 어리고 예쁜 신입이 들어와서 질투 나겠네, 적당히 괴롭혀라” 등 발언을 들어야만 했다. 참다 못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자 기관장은 “제정신이 박히지 않은 배신자”라며 “너는 정신이상자다.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라고 막말을 뱉었다. 결국 그는 사표를 냈다.

#2. ‘그 날’ 대표는 전직원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그 중 5명을 따로 앞세우더니 “뭘 잘못했는지 모두에게 자세히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대표가 쪽지를 나눠줬다. 쪽지에는 해당 5명이 ‘권고사직’, ‘생산직 발령 및 급여 강등’, ‘6개월 감봉’, ‘무죄(대표이사, 전직원 10% 감봉)’ 중 어떠한 처분이 적절할지 개인 의견을 적어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결과는 전직원들의 모바일메신저 단체채팅방에 띄우겠다고 공지했다. 대표는 “내가 죽게 되면 니네 5명을 먼저 다 죽이고 죽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3. ‘그 날’ 퇴근을 마친 주말, 저녁 시간이었다. 상사가 술에 취해 모바일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개인적인 하소연을 올렸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아무도 즉답하지 않았다. 상사는 “대답을 왜 안 하냐”며 “보는 사람은 즉시 메시지를 남겨라”라고 하곤, 다음 출근날 “모두 나를 무시해 상사의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윽박을 질렀다.

연합뉴스

일터의 수많은 ‘그 날’마다 법은 늘 공평하면서, 불공평하다.

법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제도화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며 갑(甲)질의 유형은 한층 다양해지는 중이다.

31일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수원병)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접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2019~2022년)간 직장 내 괴롭힘은 ‘폭언’(총 1만124건), ‘부당인사’(4천140건), ‘따돌림·험담’(3천279건), ‘차별’(950건), ‘감시’(794건) 등의 순으로 많다. 그런데 이 안에 속하지 못하고, 근로감독관이 유형을 어떻게 나눠야할지 모르는 ‘분류 불가’(8천842건)가 전체 2만9천930건의 28.3%에 달한다.

김영진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작년 국정감사 때부터 고용노동부에 수 차례에 걸쳐 상세 자료를 요구했지만, 노동부가 이를 세부적으로 구별하고 있지 않아 들여다 보기가 힘들었다”며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생긴 지 이미 3년이 넘었고, 갑질 유형도 다양해지는 만큼 데이터를 더 구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은 양태가 매우 다양하고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만큼 그 행위를 일률적으로 열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개별요건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행위 내용, 사실관계 등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신고 역시 신중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K-ECO팀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해당 기사에 등장한 내용은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민간공익단체(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실제 사례임을 밝힙니다.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김정규 기자 kyu5150@kyeonggi.com
이은진 기자 ej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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