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부산진성’ 역사체험 중요한 장 되어주길

손민수 부산 여행특공대 대표 2023. 2.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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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왜군에 함락, 日 새로 쌓고 자성대 명명
주민 노력에 이름 되찾아…역사 바로잡는 노력 필요
손민수 부산 여행특공대 대표

1월 25일 자 국제신문에 반가운 기사가 실렸다. “‘일제 잔재’ 자성대공원, 이제 부산진성공원입니다.” 주된 내용은 2021년 8월부터 구·시·국가지명위원회 심의가 있었고 지난 4일 ‘일제 잔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자성대공원이 부산진성공원으로 이름이 최종 변경됐다는 것이었다.

2020년 부산진성 역사문화해설사 양성교육을 맡으며 부산진성과 인연을 맺었던 필자가 알기에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사는 간단하지만 변경을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훨씬 치열했다. 2019년 말쯤일 것이다. 주민들로 구성된 부산진성탐사대(최초명 자성탐사대)가 ‘부산진성 흔적 찾기’라는 주민참여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가와 함께 성벽의 흔적을 훑으며 각각의 ‘옛’ 성문터를 찾아다녔고 성문이름 ‘동판’을 설치했다. 2021년 7월 7일 부산시는 자성대공원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는 보도자료를 배부하였고 2022년 부산진성공원 정비사업으로 동문 현판은 진동문으로, 진남대라는 현판은 승가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1월 4일 구·시·국가지명위원회는 ‘자성대공원’을 ‘부산진성공원’으로 최종 개정 고시했다.

그렇다면 왜 자성대가 아닌 부산진성인가. 부산은 지리적으로 바다를 접하고 있었기에 국방의 요충지로 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역사 기록에 부산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상황도 실은 왜구들의 침략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기록되면서인 걸 보면, 일본과 가장 가까운 대륙의 시작점인 부산의 해안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남쪽의 국경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부산진성이었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쳐들어온 조선 최초의 격전지도 바로 부산진성이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부산진성의 위치는 동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 아래로 추정한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부산진성은 함락되었다. 성을 지키려 싸우던 정발 장군과 수많은 백성들도 장렬하게 순국했다. 왜군들은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후 성을 허물었다. 증산에 증산왜성을 쌓고 ‘옛’ 자성대공원의 작은 동산을 중심으로 추가로 왜성을 쌓고는 증산왜성을 본성(本城), 이곳을 지성(枝城) 혹은 자성(子城)이라 하였다. 그리고 층계를 쌓듯 단(壇)을 쌓아 올리는 왜성의 구조적 특성에 따라 정상부도 돌로 된 성곽으로 두른 단으로 쌓아 올리고 평지화하여 자성‘대’(子城‘臺’)라 하였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성곽 개념에는 없었던 본성과 지성, 모성(母城)과 자성(子城)의 개념이 왜성이 축조되면서 생겨났던 것이다.

1599년 임진왜란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뒤 허물어진 부산진성을 새로이 쌓아야 했지만 왜란의 고통이 가시지 않았던 백성들의 노역을 최소화하고자 ‘자성대’ 왜성을 허물지 않고 고쳐 쓰게 했다. 그렇게 1607년 왜성을 고쳐 쌓은 절충형의 조선 후기 부산진성이 현재 부산진시장과 옛 자성대공원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 완성되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찻길을 놓는다, 도로를 확장한다, 시가지를 형성한다는 명분하에 우리의 부산진성은 계속 허물어졌다. 일제에게 ‘부산진성’의 허물어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 선조의 유적인 ‘자성대’를 더 중요시하고 유적지로 홍보하면서 ‘부산진성’은 사라지고 ‘자성대’라는 이름만이 남았다.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며 조선 후기 300년 세월의 ‘부산진성’은 그렇게 ‘자성대’가 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80여 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의 숙제는 부산 시민의 뇌리에 깊이 박힌 자성대를 부산진성으로 바꾸는 일이다. 시와 지자체 차원의 다양한 홍보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1974년 고증 없이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성문과 성곽 등을 제대로 된 숙의와 고증을 통해 장기적으로 바로잡아 가야 한다.

오랜 기간 필자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역사체험여행을 꾸준히 기획하고 진행해 왔다. 작년에는 부산문화재단과 함께 ‘여행으로 만나는 부산진성과 조선통신사역사관’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면서 상기 내용들도 알렸다. 참가자들은 자성대와 부산진성의 의미, 임진왜란과 한일 평화의 메신저인 조선통신사를 통해 침략의 역사와 평화의 역사를 동시에 배웠다. 그리고 아울러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넘고 경제성장과 새로운 국제시대의 리더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미래지향적 한일 교류의 열쇠를 ‘평화’로 공감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업계와 교육업계에서 필자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민간의 역할도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 속에 깊이 박힌 자성대라는 이름. 그 허물이 완전히 벗겨지기까지는 분명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빠른 시일 안에 이제야 제 이름을 되찾은 부산진성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부산역사체험의 중요한 장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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