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공지능도 데카르트가 될 수 있을까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2023. 2.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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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챗GPT가 던진 충격이 엄청나다.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는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단순한 문장에 그치지 않고 여러 문단으로 구성된 장문의 글을 완성할 뿐 아니라, 전문 학술 논문을 작성하고, 심지어 프로그램 코딩도 가능하다. 알파고가 바둑만 두었다면, 챗GPT는 거의 모든 주제에 걸쳐 인간의 지시를 알아듣고 대화한다. 이 놀라운 인공지능에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공개된 지 불과 5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을 돌파하더니, 사용자 누적 통계가 5억명을 넘어섰다.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구글이 긴장하고, 이미 10억달러를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가 100억달러 추가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챗GPT의 성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변호사 시험이나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연구에 이어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마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놀란 학계에서는 학술 논문에 사용하지 않도록 규제를 만들고, 교육 당국은 학교에서 챗GPT 접속을 막는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공개한 지 불과 두 달 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것조차 시작에 불과하다. 1750억개의 매개변수를 사용하는 현재의 챗GPT는 여전히 테스트용이고, 조만간 1조개 이상을 사용하는 후속작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GPT 외에도 구글 등 거대 기업들도 초대형 인공지능을 속속 내놓고 있다. 놀라움을 넘어 두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추월하기엔 아직 무리라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지능이 무엇인지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이다.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공지능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며 스스로 인간 못지않다고 주장한다. 데카르트가 1637년에 쓴 ‘방법서설’에 등장하는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이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또한 과학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에 대한 논고, 그리고 이 방법의 실험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으로 우리나라에는 76페이지 분량의 서문만 번역되어 있다. 아직 번역된 적이 없는 나머지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의 분량이 무려 413페이지에 달한다. 데카르트가 이토록 방대한 내용의 과학을 굳이 포함한 이유는 당시 지식인들이 진리로 믿던 스콜라 철학,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맞서기 위해서였다. 그는 끊임없이 의심했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지 않고는 새로운 과학으로 나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철학의 원리’(1644년)에서 더 구체적으로 과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사고를 전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차근차근 논박하며, 공간과 운동의 개념을 끌어낸다. 여기서 뉴턴 운동법칙의 기본이 되는 관성의 법칙이 등장한다. 그리고 힘의 전달은 오직 직접 충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원격으로 작용하는 염력이나 마술 같은 신비주의를 배격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을 의심했던 데카르트는 자신의 주장조차 의심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과신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어떠한 나의 추론도 확신하지 않는다.”

요컨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인간을 의심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따라서 생각하는 능력, 즉 지능의 중요한 특징은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은 늘 모두가 믿던 사실을 의심하며 등장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천동설을 비판하며 코페르니쿠스가 탄생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며 데카르트의 과학이 지배 담론이 되었다. 하지만 데카르트 역시 뉴턴에 의해 무너졌다. 직접적인 충돌이 필요하다는 데카르트와 달리, 닿지 않고도 작용하는 중력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뉴턴은 다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뒤집혔다. 그렇다면 인간처럼 챗GPT도 기존의 패러다임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많은 인공지능 전문가는 회의적이다. GPT는 현시점에 존재하는 지식으로 학습하고 재조합하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믿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것은 아직 인공지능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다. 따라서 GPT가 코페르니쿠스 시절에 활동했다면, 지동설을 주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챗GPT는 아직 불완전하다. 더구나 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답을 내놓기도 하고, 쉬운 질문에 터무니없는 답변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챗GPT가 어느 정도 지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분명하다. 앨런 튜링이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제시한 ‘튜링 테스트(Turing Test)’는 원래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으로 불렸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얼마나 모방했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본 것이다. 인간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신의 지능을 모방하려고 노력했다. 숫자를 연산하는 능력을 모방하며 시작된 컴퓨터는 퀴즈 문제를 풀기도, 바둑을 두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발전했다. 단번에 인간을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하나씩 인간을 닮아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챗GPT 역시 인간이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면을 모방하기는 당분간은 힘들 것이다. 기술이 부족하기보다 모방해야 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는 감각과 경험을 어떻게 기억으로 저장하는지, 이렇게 축적된 지식은 다시 어떤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지,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고도의 지능이라는 인간의 사고는 늘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이다. 어쩌면 인공지능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성찰일지 모른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결국 우리가 인간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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