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불평등 대처 두 개의 길, ‘숨 쉴 틈’과 용기

곽태원 한국노동경제연구원장 2023. 2.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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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원 한국노동경제연구원장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두고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온다. 양극단에 있는 주장은 한편 지나치다는 것이고, 한편 개혁이라는 것이다. 간첩단 사건과 연이은 민주노총 압수수색에 대한 평가 역시 같은 양상이다. 4차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간첩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경함은 별개의 감정이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색깔 공세’로 규정하고 7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익숙한 전개이고 민주노총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이 결정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한국의 노동운동 진영이 개혁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정부의 방침이나 탄압에 대응하는데 급급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대립과 갈등이 극심하다. 분단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경제 등 영역은 물론, 사람들의 삶의 조건마저 그렇다. 한쪽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상대에 대한 배려나 역지사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불평등이라는 분단, 바로 양극화다. 불평등은 이 칼럼에서 지난 1년간 제기해온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불평등은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경향과는 무관하게 발현된다. 호남사람과 영남사람 구분이 없다는 말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불평등은 기득권의 문제이다.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편한 것도, 이것이 기득권의 문제를 내포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운동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조합원 상당수는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특징으로 하는 소위 1차 노동시장의 노동자들이다. 말하자면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곽에 저임금을 받으면서 고용불안에 흔들리는 압도적 다수의 2차 노동시장 노동자들이 있다. 2차 노동시장의 노동자가 1차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비정규직이 ‘진짜’ 정규직이 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과 비슷하다.

불평등을 가리키는 지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사람들이 불평등에 불감한 데는 이유가 있다. 불평등이라는 어휘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또 불평등이 원인인 불행을 개인이 근원적으로 해결할 방도도 없다. 그러니 불평등으로 인해 나락에 떨어진 사람의 드러나는 모습은 참혹하다. 자살로도 나타나고 증오범죄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불평등이 초래하는 불행 총량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빙산의 일각을 피하는 것으로 불평등에 대응한다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은 여러 요인의 결과물이지만 기회의 불평등, 기술과 산업 구조의 변화 등 대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관심의 차원을 넘어 방향을 점검하고 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 방향만 올바르다면 위기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세상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토요일 휴무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이자는 주장, 노사정위원회에서 민주노총이 제기한 것이었다. 이 제안은 수용됐고 주5일제로 법제화됐다, 오늘날 우리가 토요일에 쉬는 것,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즉 노동계의 노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표준을 바꾼 사건이었다.

불평등은 불편한 언어이지만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언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노동운동의 주류에서 벗어난 새로운 운동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런 생각의 근거다. 최근 활발한 노동자 공제 운동은 한 예다. 저임금, 불안정고용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숨 쉴 틈’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불평등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지금의 노동운동에 부족한 영역이다.


노동운동이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구호의 실질은 직무급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용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중소기업의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속한 대기업의 기득권을 포기시킬 수 있는 용기, 혹은 이 모두를 위해 노사정의 대화에 나설 용기 같은 것들이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 견인함으로써 개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용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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