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노년내과의 젊은 의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2023. 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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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한상엽

“아직 너무 젊으셔서 건강관리 좀 더 잘 하시고… 병도 열심히 관리하셔야 합니다.”

진료실에서 필자가 자주 하는 말이다. 노년내과 진료실의 70~80대 환자들은 아들뻘 의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이 아니라, ‘개인별 노쇠 정도와 기대 여명을 바탕으로 건강 관리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2021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의 75세 여성은 앞으로 평균 14.9년을 더 산다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노인 의학 진료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전체적 노화도, 즉 실제 ‘몸 상태’를 반영한 노쇠 정도다. 나이는 중요 참고 지표지만, 때로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할 때도 있다. 예컨대 한두 가지 만성 질환을 앓고 있더라도 삶에 활력이 넘치고 근력이 좋으며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 같은 75세라도 앞으로 14년 내 사망할 가능성은 동년배보다 30% 가까이 낮다.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이 있는 경우라도 살아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면 철저히 관리하는 노력이 더 높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년기에는 그저 약을 적게 쓰고, 만성 질환 치료를 철저히 할 필요도 없다고 잘못 알고 있는 분이 많다. 하지만, 약을 줄여 몸에 부담을 덜 주는 이른바 ‘줄여나가는 치료’가 필요해지는 시기는 노쇠가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시점이다. 신체 기능이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겨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병원을 방문할 때 보호자가 필요한 때가 되면, 노인의 몸과 마음은 젊은 성인과 크게 다른 양상을 띤다. 감기약 한 알, 수면제 한 알 때문에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의식이 희미해질 수도 있다. 이때부터 노인의 신체는 연약한 아기처럼 바뀐다. 노쇠를 ‘취약성’이라 일컫는 이유다. 이때부터 매의 눈으로 철저하게 환자가 먹는 약과 질병, 기능을 두루 살피는 노인 의학적 진료가 필요하다.

평소 그렇게 진료하다 보니, 의외로 취약하지 않은 노인 환자가 많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젊음을 유지한 채 나이 들고 있는 환자들에게 ‘아직 너무 젊으셔서…’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2월 일사일언은 정희원 교수를 포함해 전지영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백순심 사회복지사·'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저자, 최선주(전 국립경주박물관장) 동양미술사학회장이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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