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태영호 아내와 댓글부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아내 오혜선씨를 최근 인터뷰했다(1월 25일 자 A23면). 오씨는 지난달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를 냈다. 인터뷰 기사에 댓글이 2000개 넘게 달렸다. 오씨의 탈북을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북 정권에 호의적인 이들이 대한민국에 이토록 많을 줄 몰랐다.
오씨는 ‘내가 정말 배신자인가?’ 수없이 되물었다고 했다. 그는 회고록에 썼다. “‘배신’이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다. 살인자에게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자기 뜻에 반하는 사람들을 법적 절차도 없이 3대를 멸하는 사람에게 믿음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북한 김씨 일가의 편에 선다면 ‘배신’이고 북한 주민들의 편에 선다면 ‘자유’일 것이다.”
북한에 대해선 사회주의 나라 국민조차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2017년 쿠바 여행을 갔을 때 체감했다. 쿠바는 이른바 북한의 ‘형제 나라’. 쿠바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피델 카스트로가 2016년 타계했을 때 김정은은 평양 주재 쿠바 대사관을 찾아 조의록에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라고 썼다. 그런데 쿠바 사람들의 시선은 북한에 대해 싸늘했다. 아바나 시내에서 시가를 팔던 남성은 말했다. “쿠바 사람들은 김정은이 TV에 나오면 ‘저 독재자는 대체 어느 이발소에 다니길래 헤어 스타일이 저 모양이냐’라며 비웃는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기자가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라고 했더니 “북한이 ‘독재 국가’지, 어떻게 ‘공산주의 국가’냐”며 흥분했다. “공산주의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뜻한다. 북한이 그런 곳인가?”
오혜선씨는 한때 ‘평등한’ 북한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오씨는 대학생 때 평양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태국 의사에게 북한의 무상 의료·교육 제도를 설명하며 “세상에서 유일하게 세금 없는 나라”라고 자랑했다. 의사는 의아해하며 “세금을 받지 않으면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는 거냐” 물었다고 한다. 당시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던 오씨가 의문을 풀었던 건 남편 따라 해외 생활을 하면서였다. 신장증을 앓던 큰아들이 덴마크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걸 보면서 그는 세금을 거둬야 복지 제도가 작동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오씨는 지난 정권 때 북한학대학원서 만난 이들이 “북한의 무상 복지제도가 우리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며 말했다. “말뿐인 복지가 실천되지 않아 느끼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오씨는 사선(死線)을 넘었고, 댓글부대는 선(線)을 넘었다. 오씨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운 이들은 북한의 실상을 정말 모르는 걸까,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까. 보다 못한 어느 네티즌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책으로 공산주의를 배우면 공산주의자가 되고, 몸으로 배우면 반공주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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