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새로운 갑(甲)의 등장

경기일보 2023. 2.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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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국민의힘 국회의원

2016년 착공한 서울~세종고속도로는 제2의 국가 대동맥이라 불리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경부고속도로의 혼잡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발전은 물론 막대한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 그래서 필자는 사업 착수부터 예산 확보까지 10년이 넘도록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에 점검해보니 공사가 예정보다 너무 늦어지고 있었다.

예산이 모자란 것도, 민원 때문도 아니었다. 도로 포장에 필요한 레미콘이 적기에 공급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작년 2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멘트 수급이 불안해졌고 경기 남부에 주택 공급 등 대형 개발사업이 몰리면서 레미콘이 품귀 현상을 빚은 것이다.

레미콘업계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계약된 관급공사보다 단가가 높은 민간공사에 우선 자재를 공급했고 그 결과 도로공사는 2022년에는 24만㎥가 필요한데 요구한 양의 절반밖에 공급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작년 11월 기준으로 구리~안성 구간의 공정은 목표치인 74%에 못 미치는 68% 선에 머물렀다.

레미콘 운송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연말 16일간의 화물연대 전면 운송 거부 이전에도 6월 화물연대, 7월 레미콘운송노조 등의 집단행동이 이어졌고 이때마다 공사현장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우선 레미콘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다 보니 지역레미콘협동조합에서 배정한 업체 3곳만 공사에 레미콘을 공급할 수 있어 공급 자체가 제한돼 있었고 도로공사는 자체적으로 레미콘 생산을 위한 임시 플랜트도 설치할 수 없었다. 또 도로공사가 직접 레미콘 단가를 올려 구매하려 했더니 위탁구매를 맡은 조달청이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조달청이나 도로공사도 나중에 있을 감사에서의 불이익을 먼저 고려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국 작년 11월24일 국토교통부, 한국도로공사, 중소벤처기업부, 조달청, 경기도 등 관련된 모든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기 위한 원탁회의를 열었다. 50명 넘게 모인 자리에서 가장 피를 토하며 어려움을 호소한 사람들은 레미콘 부족으로 공사를 못하고 있는 하청업체 임직원들이었다. 안타깝게도 공사 지연의 피해는 최약자가 가장 먼저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었다.

이후 10여차례의 협의를 거쳐 결국 올해 1월10일 한국도로공사는 시장 상황에 맞게 가격을 인상해 원자재를 발주하기로 하고 레미콘업계도 공사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공급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상생협약으로 공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물꼬를 트긴 했으나 국책사업이 이렇게 힘들어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든다. 과거보다 공정한 하도급 관계를 만들고 중소기업 보호 정책을 펴는 것은 좋지만 경직된 제도 탓에 자재가 적기에 공급되지 못하고 준공이 늦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인해 오히려 다른 중소기업과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는지 냉정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운송거부 등 집단행동도 큰 문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국가권력이나 대기업의 부당행위가 문제였다면 지난 정부 시절 친노동 정책으로 노조가 현장을 장악했다는 지적이 많다. 오죽하면 발주처가 아니라 운수노조나 원자재 공급업체가 새로운 갑이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국책사업도 이렇게 표류할 정도면 지금 대한민국의 비효율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경제가 초비상이다. 이제는 나라와 국민을 우선 생각할 때다. 현장을 장악하고 힘으로 좌지우지하는 ‘갑’은 사라져야 한다. 타협과 상생, 공존과 헌신의 정신으로 함께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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