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독립운동가’에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

박은경 기자 2023. 1. 3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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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몽규 선생, 안창남 선생, 김필순 선생

사촌인 윤동주 시인과 민족정신 운동에 헌신한 송몽규 선생, 안창남·김필순 선생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31일 밝혔다.

윤동주 시인의 사촌 형인 송몽규 선생은 1917년 중국 용정에서 태어났으며 1938년 4월 윤동주 시인과 함께 문학으로 민족계몽 운동을 펼치기 위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 문과 학생들의 자치조직인 문우회 잡지 ‘문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 말살과 일본어 상용 정책에도 한글 시를 문우에 수록했다.

그는 1942년 4월 교토제국대학에 입학한 후 교토에서 윤동주 등과 함께 민족정신 운동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은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그룹 사건’의 주동 인물로 선생과 윤동주를 함께 체포했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1945년 3월 28세 나이로 옥중 순국했다.

송몽규 선생과 윤동주 시인의 삶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에서 다뤄져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조선인 최초로 3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한 안창남 선생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안창남 선생은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일본 오구리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인 최초로 3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했다. 1922년 6월 2등 비행사 면허를 받은 선생은 비행기 ‘금강호’에 탑승해 그해 12월10∼13일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고국 방문 비행을 펼쳤다.

선생의 최초 국내 비행은 조선 청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울림을 줬다고 보훈처는 밝혔다. 선생은 1926년 여운형의 도움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고 있던 산시성 군벌 염석산 군(軍)의 항공사령관으로 활동했다. 1928년 신덕영 등과 함께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 군자금을 모집해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인 군대를 양성해 국내 진공 작전을 구상했다. 1930년 4월 산서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 중 기체 고장으로 인해 29세에 산화했다.

1878년 황해도 출생인 김필순 선생은 1908년 세브란스병원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았다.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그의 활동을 지원했다. 1911년 12월 중국 만주로 망명, 조선인 집단 거주지인 통화현에 정착하고 근대적 병원을 열어 조선인들을 치료했다. 이후 내몽고 치치하얼로 이주,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를 개원하고 의료활동에 종사하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쓰던 중 1919년 9월 순국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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