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잼도시 광주를 만들려면

정대하 2023. 1. 31. 18: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프리즘]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지난해 9월7일 오전 시청 브리핑룸에서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추진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제공

[전국 프리즘] 정대하 | 호남제주데스크

지방 청년들은 지속해서 서울로 떠난다. 기회를 찾아 서울로 가는 청년들을 말릴 수 없다. 광주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나가고 있다. 광주에 사는 청년들도 광주를 후지다고 느끼는 것 같다. 광주의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는 동명동이나 양림동 카페거리도 지루해한다. 대형 뮤지컬이나 그림 전시회 등도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가야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30대인 광주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결혼한 친구가 명절 때 시댁에 가 복합쇼핑몰에 들렀다고 하더라. 광주엔 향유할 만한 공간이 없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광주에선 몇년 전부터 ‘꿀잼도시’(꿀+재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광주시도 놀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없다는 도시를 변화시키기 위해 묘안을 고심하고 있다. 유통 대기업의 복합쇼핑몰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고, 광주를 관통해 흐르는 영산강 둔치에 익사이팅 존을 조성하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조금은 무겁게 보이는 도시에 활력을 끌어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사람과 일, 자원 연결을 추구하는 예비사회적기업 동네줌인 김태진 대표는 “건축물도 짓고 콘텐츠도 만들어내는 등 인위적인 실험이 필요할 것 같다. 일자리 창출과 꿀잼도시 만드는 것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를 꿀잼도시로 만들자는데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다. 청년 유출과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치·경제·문화 등 많은 부분이 중앙에 집중된 상황에서 청년을 더는 지역에 묶어두기 힘들다. 결국 청년 유출과 지방 소멸의 난제를 안고 있는 지방도시에선 지역발전 패러다임을 일부 바꿀 수밖에 없다. 광주형 일자리와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더라도 문화적 느낌이 있는 도시로 변해야 한다는 게 청년들의 생각이다. 나주몽 전남대 교수(경제학부)는 “지역의 미래 주체인 90년대생이 어느 지역을 선택할 것인지 위기의식을 갖고 정책을 펼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공간을 찾아 문화로 소비하는 엠제트(MZ)세대를 위한 교통 대안도 나와야 한다. 광주 청년들의 대표적인 불만 중의 하나는 공간과 공간을 잇는 대중교통 체계가 불편하다는 점이다. 순환도로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중심의 교통 체계는 자가운전자와 달리, 청년·노약자 등 교통약자들에겐 한없이 불편하다. 광주 도시철도 1호선은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터미널, 야구장 등을 피해 건설됐다. 젊은이들은 “주말·휴일이면 광주 밖으로 볼거리를 찾아 나가는 차량 행렬들이 꼬리를 무는데, 정작 가볼 수 있는 곳은 카페뿐”이라고 한숨 쉰다.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공간을 연결하도록 대중교통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광주의 도시 정체성을 대표하는 5·18 등 역사 콘텐츠에 관해서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광주에 사는 많은 청년세대에게 광주는 5·18 사적지에 둘러싸여 살았던 공간이다. 어렸을 적부터 소풍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곳 대부분 5·18 사적지와 가까이 있다. “청년들을 위해 5·18을 잊고 즐길 만한 공간 한곳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 청년의 말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광주의 역사·문화적 자원을 콘텐츠화하는 과정에서도 청년의 시각을 담았으면 좋겠다.

광주를 꿀잼도시로 만들어가는 노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도시와 너무 비슷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광주에 복합쇼핑몰이나 초고층 랜드마크 건물이 들어선다고 수도권과의 문화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세계 유수 도시의 강을 ‘생태적’으로 개발했던 사례 중 그럴듯한 풍경을 조합한 프로젝트 또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과거 기억과 유산을 깡그리 지우고, 꿀잼을 빙자한 ‘토목’으로 가서는 안 된다. 광주만의 색감과 느낌을 담아야 한다. 광주에서 호흡하며 숨 쉬고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을 담아야 진짜 ‘꿀잼’이 된다.

daeh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