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아플수록 기억해야죠"…'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전하연 작가 입력 2023. 1. 3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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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서현아 앵커 

올해는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공권력의 폭력 때문에 당시 제주 인구의 3만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이 가운데 33%는 어린이나 노인, 여성 같은 약자였습니다. 


이 슬픈 역사를 그림책의 형태로 기록하는 작가가 있는데요.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의 저자 김영화 작가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한국출판문화상도 수상을 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감사합니다. 


서현아 앵커 

그림책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이 책은 무등이왓 마을 조그만 밭에 새롭게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생명을 키우고 수확한 조로 제주 4.3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전통수를 빚는 과정을 담아 기록한 기록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정성을 담은 책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서현아 앵커 

작가님께서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신 토박이십니다. 


4.3 사건이 워낙에 아픈 얘기다 보니까 다루시는 과정에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네, 맞습니다. 


오래전부터 마음의 숙제처럼 4.3의 얘기를 담은 그림책을 꼭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또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어려움도 많았는데 이제 준비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것이 저 나름대로의 추모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시작한 드로잉 그림이 정식 그림책으로 출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이 제주 4.3 사건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프로젝트인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은 제주민예총과 탐라미술인협회가 공동 기획하고 제주도 예술인들, 동광마을 어르신들 하고 같이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중상간 마을이 참 많이 있었어요. 


근데 1948년 4.3 당시에 중상간 마을 소개령으로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마을들을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합니다.


서현아 앵커 

그러니까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게 돼서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거군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그래서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은 잃어버린 마을 중에 대표적인 동광리 무등이왓 마을 예전 집터였던 밭에서 직접 조농사를 짓고 수확한 조로 제주도 전통주 고소리 맑은 술을 빚고 그 술을 4.3 영령들에게 바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 발길이 뜸해진 죽음의 땅에 새로운 생명, 희망을 키워내고 땀, 정성, 눈물, 마음을 모은 한 잔의 술이 죽어간 이와 살아남은 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올해로 3년 차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이 죽음의 공간에서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는 어떤 희망의 프로젝트입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무등이왓 마을은 어떤 곳인지도 조금 더 소개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무등이왓은 안덕면 동광리에 있고요.


집터 흔적, 올레길들이 거의 변하지 않고 남아있어요. 


잃어버린 마을들이 보통은 개발이나 변화에 이제는 찾기도 힘들고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학살터가 곳곳에 아직 남아있고 가까운 거리에 당시 마을 사람들이 피난 했던 큰넓궤라는 동굴도 남아있고 그래서 대표적인 4.3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서현아 앵커 

과거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런 장소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이 무등이왓 마을과 같은 4.3 현장에 다니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4.3 현장을 참 많이 다녔는데요. 


4.3 현장에 가면 그때 당시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습니다. 


같은 장소에 있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데 각자 표현 방식은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과거하고 조유하는 모습들을 보면 어떤 때는 진짜 소름 돋을 만큼 그런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가수는 노래를 하고 시인은 시를 바치고 그 다음에 춤꾼들은 몸짓으로 그 마음을 다하기도 하고 미술가들은 작업으로 그 시간들을 남기는데요.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4.3 이야기가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지금 우리가 4.3을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그 과정을 쌓아오신 선배님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서현아 앵커 

네, 각자의 방식으로 또 나름대로 추모를 해 왔던 것이네요. 


작가님께서는 특히 이번 책 작업을 하실 때 펜을 사용하셨습니다. 


펜을 선택하신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제가 최근 몇 년간 계속 펜 그림을 주로 그리긴 했었어요. 


펜이 종이에 닿을 때 사각거리는 느낌을 좋아하기도 하고 연필처럼 부드럽지 않은데 종이에 판화처럼 새겨지는 느낌이 좋고 그다음에 선과 선이 겹쳐지면서 연결되는 느낌도 좋고 그리고 고칠 수 없으니까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점이 좋아서 계속 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서현아 앵커 

수정할 수가 없다 보니까 더 긴장하게 되는 거군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특히 이번 책 작업은 구상이나 스케치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바로 펜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어서 현장감이 더 살았던 것 같고 기록의 느낌을 훨씬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펜 선을 살리기 위해서 색은 최소한의 제주 닮은 땅의 색, 갈옷 색 이런 정도만 썼고요.


원래 화려한 색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 잘 쓰지도 못하고요. 


그렇게 그려진 드로잉북 한 권이 그대로 그림책으로 옮겨졌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서현아 앵커 

네, 이 거친 기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펜으로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서 그린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책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구절은 어떤 부분일까요?


네, 지금 책의 장면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이 장면인데요. 


제가 찍은 사진이나 제가 직접 보는 풍경 인물들을 그리다 보니까 제가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 장면은 출판사 대표님, 김장성 선생님이 그날 수확하는 날 직접 방문하셔서 저를 찍어주신 장면을 가지고 기본으로 그렸고요.


이 날의 기억으로 선생님이 직접 가사를 짓고 솔솔이라는 팀이 노래를 부르고 그래서 노래로 만들어졌던 점이 더 이 장면을 기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노랫말 속에 '껍데기는 날리고 알곡은 남기고'라는 구절을 노래 때문인지 계속 하루 종일 읊조릴 때도 있더라고요.


서현아 앵커 

잔상을 정말 길게 남기는 그런 장면인 것 같습니다.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그리고 아픈 껍데기는 날리고 알곡을 남기고 라는 부분을 아픈 상처나 기억들은 바람에 날려두고 옹골진 알곡으로 남긴다는 내용으로 읽힌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실제로 북토크에서도 이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꼽아주신 분들도 많았어요.


서현아 앵커 

네, '껍데기는 날리고 알곡은 남기고'라는 구절이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제주 4.3과 같은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김영화 그림책 작가 /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저자 

책에 인용한 김수열 시인 님이 쓰신 시 '솎고 돌아오는 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솎고 남겨진 우리들' 살아남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하는 시어인데요. 


혹은 또 언제 적 4.3이냐, 언제까지 죽음 타령이냐라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불편한 진실이더라도 누군가는 꼭 이야기해야 하고 상기하고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잊혀지는 순간 누군가 우리 또는 내가 솎아지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지 않고 바라보는 밝은 눈을 가지고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또한 또 그러고 싶고요.


서현아 앵커 

네, 어떤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프고 슬픈 이야기지만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통해서 함께 기억하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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