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아동의 꿈은 집에서 자란다

2023. 1. 31. 17: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체감기온이 영하 20도를 밑돌고, 한 걸음만 밖으로 나가도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강추위를 조금이라도 이겨내고자 보일러를 틀고 싶지만, 지난해 40% 가까이 오른 가스요금으로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너나없이 부담스러운 현실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관에서는 매년 겨울 '산타원정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 연말 소원을 말한 아동 10명 중 3명은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이 아닌, 난방비나 난방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나이대에 갖고 싶은 것들을 두고 난방비가 소원인 아이들을 보며, 따뜻한 봄이 하루빨리 오길 기다리게 된다.

올겨울처럼 온 나라를 꽁꽁 얼려버린 한파는 난방비나 난방기구를 받는 것이 소원인 취약계층 아동에게 더욱 매섭다. 난방비 부담에 난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그에 앞서 대개 보일러를 틀어도 온기가 머물지 않고 쉬이 사라져버리는 주거 환경이 근본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빛이 제대로 들지 않거나 공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집이 너무 좁거나 화장실이나 부엌 등 꼭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공간조차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 너무 추운 겨울에는 화장실을 가거나 씻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일도 있고, 집 안에 화장실이 있어도 수도관이 얼어붙은 탓에 제대로 씻을 수 없어 피부병 등 각종 질환에 걸리기도 한다.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집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을 '최저주거기준'이라고 한다. 2004년 법제화된 이후 2011년 최소 주거면적만 12㎡에서 14㎡로 조정됐을 뿐, 현실의 어려움을 보다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아동 35만명(21만가정)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 곳에 살고 있으며, 심지어 이 아동 중 3만명은 주택이 아닌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에서 살고 있다.

지어진 지 30년도 넘은 집에 살던 현수(가명)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 부끄러웠다. 패널로 된 집은 겨울철 차가운 공기가 그대로 들어오고, 벽과 천장에서는 수시로 벌레가 기어나왔기 때문이다. 현수는 지난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집에서 이번 겨울을 보내고 있다. "따뜻한 제 방도 생겼고, 깨끗한 새집에 이제는 친구들도 초대해요." 몰라보게 밝아진 얼굴로 이야기하는 현수를 보며 아동들에게 따뜻한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한다.

자라나는 아동에게 집은 세상의 전부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관이 2018년 실시한 '아동 주거 빈곤 실태와 주거 빈곤이 아동 권리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도 열악한 주거 환경에 거주하는 아동일수록 추울 때 더 춥고, 더울 때는 더 극심한 더위에 노출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주거 환경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해 우울하거나 불안함을 느끼고, 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기도 한다. 집은 모두에게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난방비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추위에 난방비는 아무리 아껴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에너지 취약계층이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추위를 겪는 상황에서 민간기관들은 난방비 지원부터 노후화된 주거 환경을 개·보수하거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지원을 넓혀가고 있다. 정부 역시 에너지바우처 지급을 넘어 국민들이 진정 쾌적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제도 개선 등 보다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수는 따뜻한 집에서 올겨울 새로운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현수가 그려갈 꿈의 결실을 기대하며, 보다 많은 아동들이 안전한 집에서 희망찬 내일을 꿈꾸길 기대해본다. 아동의 꿈은 집에서 자란다.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