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공원의 축구 현장] 바뀐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 경향, 유럽이 깊히 들여다본다
(베스트 일레븐)
▲ 박공원의 축구 현장
한국 축구 선수들의 해외 이적사를 돌이켜볼 때, 확실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과거 차범근·허정무와 같은 전설들이 현역일 때는 그 무대에서 뛸 자격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나가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2002 FIFA 한·일 월드컵 이후 유럽에 나갔을 때도 이 기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박지성·이영표 세대가 유럽에서 성공한 후 확실히 달라졌다.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현지에서도 꽤 높은 이적료를 기록하며 팀을 옮기는 사례가 점점 생겨났다.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맹활약하다 아스널로 이적할 때 550만 유로(한화 약 73억 원)를, 기성용이 셀틱에서 스완지 시티로 이적할 때 700만 유로(약 93억 원)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손흥민처럼 빅 스타와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는 위상과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도 나타났고, 김민재처럼 모든 빅 클럽이 노리는 스타 수비수도 탄생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특이한 요소도 보인다. 이제는 유럽 클럽들이 K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직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사실 이런 경향은 십수 년 정도 되긴 했다. 기성용과 이청용이 각각 셀틱과 볼턴으로 이적할 때 FC 서울에서 활약했고, 이후에도 권창훈·이재성과 같은 케이스도 나왔다. 예전에는 월드컵을 반드시 거쳐야만 유럽에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묘한 구도가 됐지만 이번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이 끝난 후 본선에서 2골을 넣으며 스타덤에 오른 조규성 대신 예비 선수로서 따라가 그저 경기만 지켜봤던 오현규가 셀틱 유니폼을 입었다. 외신에 따르면, 셀틱은 심지어 K리그2에 속한 부산 아이파크의 권혁규도 주목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아예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낙마한 박지수가 포르투갈 클럽 포르티모넨시로 이적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제 유럽의 스카우트들이 한국 축구를 꽤 깊은 곳까지 바라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대외적 가치가 더욱 커졌음을 알 수 있는 지표다.
K리그 클럽도 이러한 분위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시장적인 측면에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 만큼 보다 체계적으로 선수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우수한 선수를 길러내면 구단 살림도 늘어나고, 그만큼 더 좋은 유망주를 불러들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이 분위기를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유럽파를 배출하며 일약 A대표팀 전력 강화 효과와 J리그 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일본의 사례처럼, 유럽으로 직행시키는 선수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한국 축구의 성장에도 긍정적이다. 대신 K리그 구단들이 올바른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후방 지원해야 할 것이다.
K리그와 선수들의 심리적 간극을 줄이는 고민도 함께 했으면 한다. 조규성의 경우,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일단 전북 현대에 잔류하는 분위기다. 붙잡고 싶은 전북과 더 큰 무대로 떠나고픈 조규성 모두가 이해되는 상황이다. 전북은 월드컵 스타가 된 조규성 효과를 성적·흥행 측면에서 누리고 싶어할 것이며, 조규성은 유럽에서 주목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다음 이적 시장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인 만큼 기회가 왔을 때 가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 처지를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그림이 좋아야 한다는 걸 구단 측과 선수 측 모두 염두에 두고 협의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저 서로 욕심과 권리만을 주장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실무적 선에서 현명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승적 차원 운운하는 시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글=박공원 칼럼니스트(現 대한축구협회 이사)
사진=셀틱 FC 소셜 미디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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