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황금의 나라’···도탄에 빠진 민생[미얀마 쿠데타 2주년]
미얀마는 본디 ‘황금의 나라’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빛 불탑과 누렇게 익은 벼가 미얀마를 상징했다. 그러나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2021년 2월1일 민주 정부를 뒤집은 이후 미얀마는 피로 물들었다. 지난 2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전개됐으며 시민방위군(PDF)이 조직돼 무장 저항을 벌였다. 여기에 군부는 자국민을 상대로 공습까지 감행하며 유혈 탄압으로 대응했다.
시민들의 일상 또한 도탄에 빠졌다. 연 6% 내외를 이어가던 미얀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쿠데타 이후 -18% 가까이 후퇴했다. 치솟는 물가와 강도 등 범죄 증가로 실향민이 나날이 늘고 있다. 군부는 총선을 예고했지만 공정한 선거를 기대하는 이는 없다. 쿠데타 3년차를 맞은 올해, 미얀마에 봄이 찾아올 수 있을까.
예고된 ‘가짜 선거’···기울어진 선거판 ‘보이콧’
군부가 2년 전부터 선언·연장해 온 국가비상사태는 31일부로 종료됐다. 최근 미얀마 군부 대 민주 진영의 전선은 총선 실시를 둘러싸고 더욱 격화되고 있다. 군부는 지난 27일 새 선거법을 발표해 군정이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분류한 정당과 후보의 입출마를 금지했다. 또한 각 정당은 2개월 이내에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재등록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정당 등록이 무효화된다. 정당 등록 조건으로는 ‘3개월 이내 10만명 이상 당원 모집’을 내걸었다. 이는 2020년 총선보다 10배 강화된 기준이다. 또한 정당은 6개월 이내에 전국 330개 타운십(구)에 사무소를 열어야 하며 전체 선거구의 절반 이상에 후보를 내야 한다.
이 같은 새 선거법은 민족민주동맹(NLD)을 포함한 야당의 정치활동을 크게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에 약 90개 정당이 있긴 하지만, 결국 군부가 내건 조건을 충족하는 정당은 군부 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USDP) 밖에 없으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얀마 헌법상 군부는 연방의회와 지방의회에서 의석 25%를 자동으로 보장받기 때문에(무투표 할당), 이번 선거에서 USDP가 의석 26%만 추가로 확보한다면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 상하원에서 의석 75% 이상을 확보할 경우 개헌도 가능하다.
이에 NLD를 주축으로 하는 국민통합정부(NUG)는 시민들에게 총선 준비를 돕지도 말고 총선에 참가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이 ‘가짜 선거’를 보이콧하겠다고 일찌감치 밝혔다. NLD로서는 자신들이 이길 수 없도록 판이 짜여진 선거에 참여해 패배할 경우 군부의 ‘형식적 정당성’에 힘을 보태는 셈이 되고, 참여해 봤자 공정하게 경쟁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보이콧 선언 이후 이들은 군부가 선거인 명부 작업 등을 벌이는 선거준비사무소, 군인 및 공무원 등을 상대로 공격을 벌이고 있다.
정치적 탄압·삶의 터전 파괴···“군부 압박 강화해야”
지난 2년 동안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했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30일 기준 집계를 보면, 쿠데타 이후 1만7525명이 체포됐으며 1만3719명이 여전히 구금 중이다. 군부에 살해된 이들은 2901명에 달한다.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이들은 101명으로 파악됐다. 아동 인명 피해도 잇따라, 489명이 체포되고 282명이 숨졌다.
민주인사에 대한 비공개 재판과 사형을 집행해 국제사회의 규탄도 받았다. NLD 소속 전 의원 등 4명이 지난해 사형당한 데 이어, 아웅산 수치 고문 역시 최근 재판에서 선거 조작 등 혐의로 총 33년형을 최종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쿠데타 이후 경제 제재 등으로 인해 미얀마 경제는 고꾸라졌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군부가 집권한 2021년 미얀마 GDP는 -17.9% 떨어졌다. 세계은행은 “지속적인 분쟁과 전기 부족이 삶과 생계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며 경제 활동이 방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년 미얀마 빈곤층은 전체 인구 약 40%인 2200만명까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석유와 가스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지난해 7월 인플레이션이 거의 20%에 달했다. 미얀마 화폐 짯의 가치는 지난해 6월~12월 4분의 1 가량 하락해, 2년 전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군부가 ‘달러당 2100짯’을 고정환율로 정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달러당 2800짯으로 거래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 같은 민생 악화와 군부의 탄압, 성폭행·방화와 같은 범죄 행위 등으로 인해 실향민이 100만명 이상 발생했고, 주변국으로 향한 난민은 약 7만명으로 추정된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은 미얀마에서 최소 1760만명이 인도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놓였다고 밝혔다. 일레인 피어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국장은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이후 2년 동안 미얀마 국민을 향해 반인륜적 범죄,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며 “8월 가짜 선거를 치르는 대신 자신들의 범죄에 대한 국제적 대가에 직면해야 한다. 국제사회 또한 이들의 선거를 승인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적 지지와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버마법(Burma Act)을 통과시켜 반군부 세력에 비군사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미얀마 민주 진영은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31일 쿠데타 2주년 분석 기사에서 “공습에 대응할 무기가 거의 없는 것이 시민방위군의 약점”이라며 “모든 병력을 무장시키는 것이 NUG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국회 계엄령 해제 가결 후 물러서는 계엄군…국회 직원들 “이겼다 와”
- 야권 탄핵연대 “윤 대통령 탄핵안 오늘 발의”
- CNN “계엄령 선포, 기괴해···대통령의 과잉 반응” 영 교수 발언 보도
- [속보]추경호 “국민께 심려끼쳐 죄송···비상 계엄 뉴스보고 알았다”
- [속보] 한동훈 “윤 대통령, 참담한 상황 직접 설명해야···국방장관 즉시 해임해야”
- 윤 대통령 비상계엄에 친한계는 “계엄 해제” 요구, 친윤계는 ‘침묵’
- 계엄 회의 거부한 법무부 감찰관 “윤석열은 반란 수괴, 정권 바뀌어도 책임 물어야”
- 일 정부 당국자, “군 움직이는 것은 쿠데타나 다름 없다”···한국 계엄에 당혹감
- [속보]대통령실 입구에 바리케이드 설치···차량·인원 통제
- 텔레그래프 “민주주의 배신한 계엄령···박정희와 비교하지 않기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