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울린 산학협력…팔 수도 없는 물건 만들고 “돈은 내라”

송복규 기자 2023. 1. 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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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와 기술이전 계약 맺은 A사, 연구 위탁해 얻은 시제품 성능 떨어져
연구 결과 미진한데도 잔금 지급 요구…문제 해결은 미진
학교측 “계약서에 연구 성과 기준 없어… 시제품 평가 자의적일 수 있어”
고려대 전경. /고려대

향기를 사업 아이템으로 하는 중소기업 A사는 2021년 한 경제단체가 주관한 행사에서 기술 애로 관련 상담을 받았다. 가정집과 자동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제를 만드는 것이 업체의 목표였다.

상담을 진행한 경제단체는 A사에 고려대 산학협력단을 통해 B교수를 소개했다. B교수는 나노입자 탑재로 기능성 물질 방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몇 주 동안 방향제의 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업체 측에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른 기업과 특허 기반 전용실시권으로 기술이전을 한 경력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A사는 2021년 10월 7일 고려대 산학협력단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B교수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었다. 이에 계약금 4000만원과 함께 신제품 매출액의 3.5%를 별도로 경상실시료로 지급한다는 항목도 넣었다. 같은 달 19일에는 B교수를 연구책임자로 한 연구계약서를 체결해 계약금 2600만원을 지급했다.

신제품 개발은 순조로운 듯했다. B교수는 계약을 체결한 지 세 달이 지난 지난해 1월 추가 연구용역비를 요구했다. A사는 B교수의 요청에 따라 1000만원을 추가 입금했다. 경기 김포시에는 신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제조시설을 5620만원 정도를 들여 만들었다. 제품을 포장하기 위한 디자인 개발에도 나섰다. A사가 투자한 금액은 총 1억1200만원으로, 중소기업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B교수 측으로부터 받은 시제품은 받아본 예상과 달랐다. B교수에게 컨설팅을 받았던 내용대로라면 향의 지속 시간이 5~7일 이상이어야 하는데, 1~2시간이면 사라졌기 때문이다. 큰 분자에 결합하는 물질인 리간드(Ligands)와 이온으로 유효물질의 안정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교수의 설명이었지만, 발향력과 유지력이 기존 상품보다 떨어졌던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친 시제품을 받은 A사가 받은 것은 고려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온 잔금 청구 요청 메일이었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2022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A사 측에 잔금 지급 요청을 했다. A사는 B교수가 내놓은 시제품의 성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잔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공문을 고려대에 발송했다.

31일 A사 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B교수에게는 설비 시설을 구축하고 있는 과정을 모두 공유하면서 신제품 개발에 협조했다”면서도 “설명했던 기술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시제품이 나왔고, 우리 입장에선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고려대는 대응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건 A사가 공문을 발송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10월 B교수와 A사 관계자, 고려대 산학협력단 관계자, 컨설팅을 매칭한 경제단체 관계자가 모인 중재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B교수는 연구개발이 실질적으로 미진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A사의 주장에 대해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B교수가 설명한 것과는 별개로 기술이전 계약서와 연구개발 계약서에 시제품의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려대 관계자는 “연구개발 계약서에 연구 성과에 대한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제품에 대한 평가가 자의적일 수 있다”며 “연구개발 계약금을 제외한 설비 시설 투자액도 피해액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에서 연구된 성과를 기업으로 이전하는 산학협력 활동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가장 최근 발행한 대학산학협력활동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대학들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사례는 연간 6110건으로 전년보다 850여건이 늘어났다. 이 가운데 94.1%가 벤처와 일반 중소기업에 이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산학협력이 성공적으로 이어졌는지, 기업들의 만족도는 어떤지는 별도로 조사되고 있지 않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해 10월 중재회의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이 문제를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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