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확충' 빠진 필수의료 대책…당근만 주고 의대정원 손 못대나
복지부 "의료인력 확충, 의료계와 협의해 구체안 마련"…의정협의 '성과' 미지수 우려도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정부가 31일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는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담겨 있지 않다. 의사단체와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게 표면적인 해명인데,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의사 수 부족 사태가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이날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충분한 의료 인력 확보'와 관련해 "의료인력(전문의)은 신규 양성에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현재의 인력수급 범위 내에서 근무여건 개선, 지역·과목간 균형 배치를 통해 인력의 유입을 유도하며 전문인력의 총량 확대를 위해 의료인력의 공급 확대도 동시에 추진한다"고 밝혔다.
'의료인력의 공급 확대도 동시에 추진한다'는 부분이 의대 정원 확대를 의미한다. 복지부는 이어 "지역 의사 부족과 필수분야 의사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적정 의료인력이 확충될 수 있도록 의료계와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 이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하고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매주 회의를 열어 지역의료, 필수의료, 의학교육 및 전공의 수련체계 발전방안 등 의료계 현안을 논의한다.
필수의료 분야 인력이 부족하고 지역별 격차가 심각하다는 데는 모두 이견이 없다. 복지부는 지방병원과 필수과목에 전공의를 확대 배치할 방침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2006년부터 17년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의협은 필수의료 공백 문제가 저수가, 의료사고 책임, 열악한 근무 환경에 기인하는 만큼 의사 정원 확대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재의 열악한 처우가 지속된다면 아무리 의사를 늘려도 필수의료 분야 기피를 막지 못한다는 논리다.
복지부 역시 이날 발표자료를 통해 "비필수·비응급·비중증분야 의사와 비교해 당직근무 등 과중한 업무, 업무대비 낮은 임금,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와의 갈등 부담 등이 필수의료 기피요인"이라고 짚고 있다.
특히 의료계는 정부에 고난도 수술 중에 발생한 의료사고에 중과실 외 처벌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실제 정부는 이에 호응해 이날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 완화 방안을 비롯해 근무여건 개선, 지역별·과목별 균형 배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불가항력 의료사고와 관련해 피해자 재판절차진술권, 타 직역과의 형평성, 국민 법감정 등을 고려해 의료인 부담 완화와 의료사고 피해자 구제방안을 검토한다. 구체적으로 특례의 필요성 등을 종합 고려해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하거나 별도의 특례법을 제정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지난해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의사협회 주관의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토론회에서 진료과목별 신청건수 대비 사망 의료분쟁 건수 비율이 흉부외과 53.4%, 내과 44.3%, 응급의학과 37.3%, 가정의학과 26.5%, 외과 26.3% 순으로 드러난 바 있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날(30일) 사전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고 안 오려는 이유가 안정적인 진료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지적 때문이라고 해 (특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일반적인 법적 논리도 같이 검토할 부분인데, 법무부 의견도 청취하고 입법 태도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며 "어떤 형태로 법안을 만들지는 추가로 검토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만 "(형사처벌 면제 여부 등이 포함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결정한 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는 분만시 뇌성마비 등 불가항력 의료사고의 보상 금액(현재 최대 3000만원) 및 국가분담비율(국가 70%, 의료기관 30%)도 2024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필수의료 분야 인력의 업무강도와 처우도 개선한다. 분야별·지역별 근무여건, 인력수급 추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당직 후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36시간에 달하는 전공의 연속근무도 축소를 추진한다.
미국은 전공의 연속근무를 24시간으로 제한하고 있고 일본도 의사의 초과근무시간을 연 960시간(월 100시간) 미만으로 제한한다. 필수의료에 헌신한 의료인을 위한 '한국의 의사상'(가칭)도 도입한다.
다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정부와 의료단체 간 해법에 상당한 격차가 있어 의정협의를 통해 원만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가 요구해 온 보상책만 내주고 의대 정원 확대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물론 정부가 이날 발표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민감한 협의 과정에 차질을 주지 않으면서 의대 정원 확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인 의도로 보기도 한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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