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환자, 분당 60단어로 소통 가능…뇌 이식 ‘칩’의 기적

곽노필 2023. 1. 3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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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음기관 근육 관련한 뇌 신경 신호 판독
이전보다 3배 빨라…“일상대화 속도 가능”
사지마비 환자가 입 속으로 하는 말을 뇌 이식 칩이 읽어내 컴퓨터 화면에 표시해주고 있다. 동영상 갈무리

근육이 점차 마비되는 루게릭병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환자가 뇌 이식 칩 덕분에 일반인의 일상 대화와 비슷한 속도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8년 전 루게릭병으로 언어능력을 상실한 한 미국인 여성(67)이 뇌에 이식한 뇌파 측정 칩을 이용해 1분당 62단어의 속도로 문자나 기계음성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데 성공했다고 최근 사전출판논문 저장소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는 언어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1분당 160단어 속도에는 못미치지만 스탠퍼드대와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세운 이전의 뇌 이식 칩 최고 기록(1분당 18단어)보다는 3배 이상 빠른 속도다.

또 오류율(50단어 어휘 기준)도 9.1%로 이전보다 2.7배 적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그러나 12만5천 단어의 대규모 어휘 기준으로 범위를 넓히면 아직 오류율이 23.8%로 높았다.

연구진은 “마비 환자와 대화하는 속도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실험 결과”라고 이번 연구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필립 사베스 연구원은 기술 전문매체 ‘MIT 테크놀로지리뷰’에 “이 정도면 많은 이들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며 “뇌 판독 기술이 곧 실험실을 떠나 실제 유용한 제품이 될 수도 있는 엄청난 성과”라고 말했다.

손 글씨 동작 아닌 조음기관 움직임 판독

연구진이 만든 뇌 이식 칩은 미세한 전극이 달린 칩으로 뇌의 운동 피질에 삽입된다.

컴퓨터에 연결된 이 칩은 한 번에 수십개의 뉴런 활동을 기록한다. 사지가 마비된 사람이 어떤 동작을 상상할 경우 그 동작에 담긴 신경 신호를 칩이 전달하면 컴퓨터가 이를 해독한다. 연구진은 그동안 특정 행위에 필요한 손 동작을 상상하도록 하고 이를 뇌 이식 칩이 판독하는 기술 개발에 중점을 뒀다. 예컨대 어떤 글자를 쓰는 동작을 상상하면 가상 키보드에서 해당 글자를 선택한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비디오 게임과 로봇 팔 제어도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반면 연구진은 이번엔 손 동작이 아닌 말할 때의 입과 혀, 성대 등 조음기관 근육의 움직임을 해독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손 동작보다 매우 작고 복잡한 움직임이다. 연구진은 마비 환자가 말하려는 단어를 거의 정확하게 컴퓨터 프로그램이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4개의 뉴런 위치를 찾아내 뇌 이식 칩에 연결함으로써 이번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유타대 리처드 노만 교수가 개발한 뇌 이식 칩 ‘유타 어레이’. 유타대 제공

대규모언어모델 지피티3에 결합에 큰 기대

말할 때의 조음기관 움직임과 관련한 뇌 신경 신호를 해독하는 이 기술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에드워드 창 박사 연구팀이 앞서 개발한 바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이용해 2021년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1분에 18단어를 말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창 박사팀보다 더 정확하고 3~4배 빠른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가 적용한 기술은 유망한 접근 방식이지만 아직은 개념 증명 단계이며 완전하고 임상적으로 실행 가능한 단계는 아니다”라며 “훈련시간을 줄이고 오류율을 더 낮추는 등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이 시스템을 인공지능과 연결시켜 정확도와 속도를 더욱 높여갈 계획이다. 다음에 오는 단어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몇가지 기계학습 프로그램을 시험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진은 최근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지피티3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뇌 이식 칩에 연결하면 정확도와 속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이번 성과는 여러 기관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브레인게이트’라는 뇌이식칩 연구 컨소시엄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현재 10명이 넘는 자원자들이 브레인게이트에 참여해 뇌에 전극을 심은 상태다.

이들이 사용하는 뇌 이식 칩은 ‘유타 어레이’(Utah Array)라는 100개의 미세한 바늘이 나 있는 사각형 금속 칩이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101/2023.01.21.524489

A high-performance speech neuroprosthesis

bioRxiv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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