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돌고래의 새끼 장례식을 본 적 있는가

조일준 기자 입력 2023. 1. 3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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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동물의 다양한 의례를 10개 범주로 소개하는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얼룩말이 상대방을 입으로 살짝 문 다음 털을 다듬어주면서 인사하고 있다. ⓒ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코끼리가 죽은 가족이나 동료의 곁을 지키는 습성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한 동물원에선 코끼리 사체를 잘 보이는 곳에 잠시 놓아두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다른 코끼리 두 마리가 밤새 번갈아 죽은 친구를 찾아갔다. 갈 때마다 각자 죽은 코끼리의 몸에 흙을 뿌려 덮어줬다. 둘은 모잠비크에서 태어나 예닐곱 살에 미국 동물원에 왔는데, 야생에서 지냈을 때 가족의 죽음과 애도의 경험을 재현한 것으로 추정됐다.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의 사체를 끈질기게 등으로 떠받쳐 업고 다니는 동안 무리가 호위하거나, 어미 침팬지가 죽은 새끼를 오래도록 안고 다닌 사례도 종종 관찰된다.

어른 수컷 아프리카코끼리가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수컷의 입에 코를 갖다 대며 인사하고 있다. 특별히 서열이 높은 수컷 코끼리에게는 코끼리들이 줄지어 인사할 때도 있다. 사람이 종교 지도자나 마피아 두목의 반지에 입맞춤하는 의례와 비슷하다. ⓒ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미국 동물학자 케이틀린 오코넬의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이선주 옮김, 현대지성 펴냄)는 인간이 아닌 동물도 다양한 ‘의례’ 행위로 유대와 결속을 다진다는 것을 풍부한 관찰과 분석으로 보여준다. “정확한 절차에 따라 자주 되풀이하는 구체적인 행동은 모두 의례”다. 개체 각각의 특이한 행동이라도 집단에서 반복된다면 의미를 얻고, 의미가 깃들면 의례가 된다. 상대방의 정보를 모으는 의례는 사회적 동물 사이에서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믿음을 쌓게 한다.

지은이는 동물의 다양한 의례 행위를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이라는 10가지 범주로 나눠 소개한다. 코끼리와 돌고래뿐 아니라 침팬지, 오랑우탄, 하이에나, 코뿔소, 얼룩말, 조류와 곤충까지 온갖 동물이 등장한다. 늑대의 주둥이 핥기, 땅거미가 질 무렵 원숭이들의 짖어대기, 사자 무리가 세력권을 주장하려 으르렁거리기, 홍학이 긴 목을 펴고 머리를 휙휙 흔들며 집단행진을 한 뒤 날개를 펼치는 군무, 코끼리가 기다란 코로 상대의 입을 조심스럽게 만지는 행위, 남부땅코뿔새가 죽은 새를 선물하려 안달하는 것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침팬지는 ‘놀이 얼굴’로 알려진 웃는 표정을 보일 때가 있다. 장난으로 몸싸움을 벌이고 간지럼을 태우면서 인간의 웃음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수컷과 암컷 기린이 서로의 목을 감싸며 구애하고 있다. ⓒ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의례 참여는 개체의 두려움과 불안을 가라앉히고 면역력과 인지능력까지 높인다. 미소나 응시 같은 무언 의례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분비를 자극해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놀이 의례는 상대의 의도와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생존에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준다. 인간뿐 아니라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도 똑같다. 인간과 동물은 비슷한 환경에 노출되면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인간은 코끼리, 고래, 늑대를 비롯한 의식이 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만이 유별나게 특출한 생명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 알래스카 국립공원의 늑대 무리 중 한 마리가 우두머리였던 형제를 잃고 울부짖고 있다. 이 늑대는 2주 동안 날마다 울었다고 한다. ⓒ Caitlin O’Connell & Timothy Rodwell, 현대지성 제공

그러나 고도의 과학기술 문명을 이룬 인간에게는 특별한 두 가지 힘이 있다. “이 행성 위의 서식지와 모든 생명을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이다. 인간의 책임감이 특별한 이유다. 기후변화는 대표적 사례다. “동물과 서식지를 구하기로 결심하면 우리 자신도 구원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인간을 포함한 사회적 동물 집단이 의례를 통해 “서로 연결하고, 두터운 유대를 느끼고, 새로운 질서에 몸을 맡긴 채 공동체에 뿌리내리는” 것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삶은 의례를 통해 더 깊고 풍부해진다. 지은이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놓치고 있거나 잃어버린 의례 기술을 되찾는다면 타인과 우리 자신, 그리고 자연을 잇는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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