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서울 밖으로 나가라?…한동훈의 '한국형 제시카법' 통하려면

강민우 기자 입력 2023. 1. 31. 09:24 수정 2023. 1. 3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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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12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와 경기 안산시의 한 주택으로 향했던 2020년 12월,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지역주민의 감정은 입체적이었습니다. 당시 경찰과 지자체가 내놓은 대책들은 다양했고, 강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전 국민이 다 아는 흉악 성범죄자가 내 지역사회에 왔다는 데에서 나오는 거부감을 불식할 순 없었습니다. 2년 뒤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 출소 때에도 여러 대책들이 제시됐지만 똑같은 갈등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전담 보호관찰관, CCTV 추가 설치, 청원경찰 배치 등 흉악 성범죄자들의 재범 가능성을 차단하는 수많은 방안들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가며 도입됐지만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재범 가능성을 0에 가깝게 관리한다 한들, 내 아이의 통학길 근처에 흉악 성범죄자가 있는 걸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역시 가장 간단한 방법은 흉악 성범죄자들이 출소 후, 주민들 반발이 있는 지역,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지역 등에 살지 못하게 하는 거겠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 헌법 체계에선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이 들고 나온 게 '한국형 제시카법'입니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기존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을 통해 재범 우려가 큰 '고위험 성범죄자(sexual predator)'가 출소하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린이집, 유치원 등 미성년자 교육 시설에서 최대 500m 이내 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사안별로 법원 결정에 따라 500m 범위 내에서 거주 제한 반경을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한국형 제시카법' - 재범 방지보다는 사회적 격리


그런데, 의외로 성범죄자에 대한 거주지 제한정책이 재범 방지에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거주지 제한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주지를 제한한 지역에서의 성범죄 상습성을 다른 범죄와 비교할 때 오히려 약간 더 증가했다는 미국 미시간주의 보고(Mustaine. E. 2014, Sex offender residency restriction : Successful integration or exclusion?)도 있고, 콜로라도 주의 경우에도 아동 대상의 성범죄 재범과 초범을 비교할 때 거주지 제한 지역 여부와 무관하게 나타났다는 보고(Levenson, J., & Hern. A. 2007, Sex offender residence restrictions : Unintended consequences and community reentry)도 있습니다. 재범 방지 효과에 이견이 있음에도 이 정책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래 그래픽을 보면 조금 더 쉽게 유추가 가능합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 마부작침팀과 함께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모든 초중고교, 유치원, 어린이집 반경 500m를 표시해 봤습니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통과될 경우, 고위험 성범죄자들은 노란색 원 내에 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언뜻 봐도 인구가 밀집해 아동 교육시설이 곳곳에 있는 서울에선 북한산, 관악산 정도가 아니고선 살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입니다. 서울 말고도 대부분의 대도심에선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여기서 한동훈 장관이 지난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제시한 단서 조항이 눈에 띕니다.
 
한동훈 법무장관 (2023. 1. 26)
"500m 안에서 법원이 개별 사안의 특징을 감안해 구체적 거리를 결정할 계획이고 이 과정에서 여러 변화를 줄 수 있도록 했으므로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국가가 운영하는 수용·보호 시설은 거리 제한을 안 받게 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법이 시행될 경우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주거지를 구하지 못할, 어렵게 구한다 하더라도 지역사회의 반발을 직면할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국가의 수용·보호 시설이라는 옵션을 택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기존의 여러 대책들과 달리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사실상의 사회적 격리, 그리고 이를 통한 주민 불안 해소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도 이러한 추가적 보호관찰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배인순 변호사(JY법률사무소)는 "일본의 경우엔 사회 내에서 강화된 보호관찰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대상을 국가가 마련한 일정 시설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며 "사회적 불안 해소뿐만 아니라 좀 더 효과적인 재사회화와 재범 방지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보호법' · '유명무실 제한정책' 우려 피하려면


'한국형 제시카법'을 통해 사실상의 사회적 격리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국가 수용·보호시설에 입소를 강제할 수는 없는 만큼 허점은 존재합니다. 500m 제한을 보수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서울 등 대도심만 조금 벗어나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은 많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으로 꼽은 전북 임실, 경북 의성군의 전체 초중고교, 유치원, 어린이집 반경 500m를 표시해 봤습니다. 거주 가능한 공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서울과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이미 출소한 고위험 성범죄자들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하다는 게 법무부 판단인데, 현재 서울시내 아동 보육시설 반경 500m 안에 있는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만 48명 (JTBC뉴스룸, 2023. 1.26 보도)입니다. 거주 제한 범위가 보수적으로 적용될 경우, 이들은 사실상 서울을 떠나서 주거 공간을 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형 제시카법'이 적용될 경우 고위험 성범죄자들을 지역으로 사실상 밀어내는 이른바 '서울 보호법'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옵니다. 거주지 제한정책 관련 연구(윤가현, 2015, 성폭력범죄 재발방지를 위한 정책으로부터의 교훈)에서도 "성범죄자들이 사회해체지역으로 몰려 살면서 범죄 재발방지 효과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주민들도 불안한 생활을 하는 등 불이익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복수의 고위험 성범죄자가 특정 지역에 몰려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어떻게 될까요? 지역 주민의 불안감과 거부감 증대는 물론이고 그 외 지역 주민들의 해당 지역에 대한 거부감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거주 제한 반경을 사안 별로 법원의 결정을 받기로 한 것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학교 등 아동교육시설이 많은 서울 양천구는 거주제한 범위를 300m로 해도 거주 공간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이를 100m, 50m까지 낮출 경우 거주 가능한 공간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거주 제한 범위가 좁혀질 경우 "내 옆집에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에 시한폭탄이 살고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겠다"는 본래의 법 개정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A라는 고위험 성범죄자는 50m 이내에, B라는 고위험 성범죄자는 500m 이내에 사는 등 범위 편차가 지나치게 클 경우 '우리 아이의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주변은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법원에게 과도한 재량을 부여하는 게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강용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형사팀)는 "고위험 성범죄자마다 기존 거주 공간이 다르고, 법원은 이에 관한 충분한 판단요소를 가지지 않고 재범을 할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에 관하여만 알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죄를 범한 자는 6개월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식으로 법정형의 범위가 과도하게 넓게 설정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허수'가 아닌 '묘수'가 되려면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경기 화성병)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출소하는 성폭력사범이 4,892명입니다. 이 중 19세 미만 대상 성폭력사범만 3,265명입니다. 3회 이상 성폭력을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성범죄자가 올해에만 54명 출소합니다. 한동훈 장관이 언급한 한국형 제시카법의 적용 대상, '불특정 다수를 사냥하듯 (성폭행)하는 소위 괴물들'이 바로 이들일 것입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준비하면서 지난 10월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거주 제한 범위에 대해선 외국 입법례를 거의 전수 조사하다시피 하여, 매우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위헌적 요소를 피하면서 지역 주민 불안감 해소와 재범 방지 등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고위험 성범죄자 출소 때마다 반복되어 온 갈등을 막을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옵니다. 하지만, 상술했듯 법의 취지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명확한 우려점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법무부가 국회 제출 목표 시한으로 잡은 5월까지 얼마나 정교하게 법안을 다듬느냐에 따라서 '한국형 제시카법'이 고위험 성범죄자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막는 묘수가 될지, 아니면 허수에 그칠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터분석 : 배여운(마부작침팀), 그래픽 : 전유근)

강민우 기자khanport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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