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법의 신’ 테미스가 쫓는 건[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27)

2023. 1. 31. 08: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꽃길만 펼쳐진 인생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꽃길은 천국에나 있다. 대부분은 지옥의 불길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치며 산다. 조금만 잘못하면 끝없이 추락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죄악을 뒤쫓는 정의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 (1808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 법의 테두리에 걸쳐 있을 때가 있다.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법을 이용하다가 걸리기도 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법이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됐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스신화에서 율법의 여신이 테미스다. 테미스는 그리스어로 ‘율법’을 뜻한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6번째 딸이다. 그는 가이아로부터 예언술을 이어받았다. 델포이 신탁의 수호신이 되어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과 세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됐다. 테미스는 델포이의 수호신으로서 신탁, 제의, 율법 등을 발명해 신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신들을 소집해 연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테미스는 두 눈을 가리고 정의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종종 그의 딸인 ‘정의의 여신’ 디케와 이미지가 겹치기도 한다. 테미스와 디케가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앞날을 내다보는 예언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주관성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저울은 공정한 판단, 그리고 칼은 허구와 거짓으로부터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 디케를 한국적으로 형상화한 법과 정의의 여신이 있다.

정의의 여신 역할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피에르 폴 프뤼동(1758~1823)의 ‘죄악을 뒤쫓는 정의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이다. 어두운 밤 칼과 주머니를 든 남자가 도망가면서 벌거벗은 채 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하늘에는 횃불을 든 여신과 칼·저울을 든 여신이 도망가는 남자를 쫓고 있다. 횃불을 든 여인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 칼과 저울을 든 여인은 정의의 여신 테미스다. 도망가는 남자의 피 묻은 칼은 벌거벗은 남자를 죽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움켜쥐고 있는 주머니는 돈주머니를 의미한다. 돈주머니는 남자가 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를 죽인 이유를 설명한다.

남자는 하늘에서 죄를 묻기 위해 나타난 복수의 여신과 정의의 여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남자가 완전 범죄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어두운 배경은 범죄현장을 강조한다. 그와 대비되는 달빛과 횃불은 범죄현장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이 접혀 있는 것은 판결이 나왔음을 의미한다.

프뤼동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파리최고재판소의 중죄 재판정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받아 제작했다. 그는 법정에 적합한 죄와 처벌이라는 주제를 신화를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냈다.

법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게 만든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정의가 언제나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박희숙 작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