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선진국이라는 말이 불편한 우리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장 2023. 1.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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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장

글쎄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진국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흔히 사용되는 경제 지표를 이용해도 그렇다. 실질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가 4만 불이 넘은 것도 몇 년 전의 일이 됐다. 이에 국제기구인 유엔무역개발회의는 2021년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결정했다. 또 소위 한류라고 부르는 우리의 문화는 전세계의 큰 유행이 돼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불과 수 십 년 전 만해도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했던 나라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이런 우리의 위상 변화는 한편으로 자랑스러움을 넘어서 여러 국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이제 선진국 국민이라 불리는 우리는 어떨까? 갑작스러운 위상 변화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뭐가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듯이 양적인 성장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선진국 국민이라는 말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울까? 선진국이 돼 무엇이 좋아졌을까? 한편으로 그토록 원하던 세상이 아니었던가? 긍정 부정을 떠나 선진국으로서 우리를 바라보는 입장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박태웅 작가의 표현처럼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한편으로 기뻐해야 할 선진국이라는 타이들에 왜 우리는 혼란스러움을 느낄까. 경제적 성공과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왜 우리 국민의 행복이나 만족감 그리고 삶의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은 우리의 성장 형태와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갑작스럽고, 너무 빠른 변화라는 것이다. 전례가 없는 짧은 기간에 감당하기 힘든 많은 일이 벌여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짧은 기간에 이뤄 낸 성과에 고민해야 할 이면이 있다는 말이다.

전후 수 십 년 동안 경제는 효율이 좋은 엔진을 단 기계처럼 최고의 성과를 보여줬다. 물론 단시간에 이뤄 낸 우리의 성과에 항상 긍정적인 의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삶을 위한 생활의 빈곤은 해결이 됐을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은 허전하기만 하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우리의 성장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회 문제는 갑자기 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지난 시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우리에게 수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성장의 기한을 맞춰야 하는 우리에게 이런 문제들은 사소하게 생각돼 무시하고 지나갔을 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해결되지 않은 작은 빚들이 모여 큰 부채가 돼 지금 우리에게 변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나는 우리가 갚아야 할 부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대학병원 교수로서 내가 걱정하는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들이다. 선진국 중 가중 높다는 자살률과 노년의 빈곤문제,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낮은 출산율과 청소년과 청년의 미래를 규정하는 학벌 중심의 사회구조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우울감, 불안 그리고 분노 같은 감정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우리의 GDP가 5만, 6만 불의 된다고 해도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제 양적성장에만 너무 집착할 것이 아니라 건강함과 행복과 같은 삶의 질에 대한 가치도 무게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성장의 혜택을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초부터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산술적 성과가 사회 구성원의 만족과 행복의 증대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난 어려운 시기 우리의 노력과 성과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더 행복해져야 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만약 필요하다면 성장의 속도를 조절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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