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모두 아프리카로 달려갔다…미·중·러, 승자는?

이정민 2023. 1.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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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보스 포럼도 제치고 간 아프리카
… 미국 재무장관의 '매력 공세'

2023년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재무부가 장관의 해외 방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흔치 않은 미국 재무장관의 아프리카 순방.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는 대신이었습니다.

12일이나 되는 방문 기간, 미국 국내에서와 달리 옐런 재무장관은 함박웃음이 담긴 사진을 유독 많이 남겼습니다. 세네갈의 농촌 전기화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해 현장 책임자와 함께 삽을 뜨고, 여성 기업인 꿈나무들을 만났습니다.

잠비아의 공중 보건 투자 현장을 찾았고 농업 현장을 둘러보며 여성 노동자들과 친근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포드 공장과 청정 에너지 관련자들을 만나 잇따라 사진을 찍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근함을 과시했습니다.

향후 투자 의향을 얘기하는 데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남아공 연설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아프리카가 세계 경제의 미래가 될 거라는 단순한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며, "미국은 아프리카의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본다", "번영하는 아프리카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더 큰 시장이자 투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가운데)이 24일 잠비아 총웨의 여성협동조합과 농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재닛 옐런 트위터)


■ "아프리카 부채 부담 줄여야"…속내는 '중국 잠식 막아라!'

옐런 장관의 방문은 지난해 12월, 8년 만에 열린 '미-아프리카 정상회의'의 연장선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리카연합(AU)의 49개 정상과 고위급 대표들을 초청해 연 자리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 무역과 투자의 기회를 열겠다", "아프리카와 미국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가까워질 것"이라고 강조하며, 향후 무역 확대의 기반이 될 미국-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3년간 550억 달러(67조 5천억 원)를 투자하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그동안 일방적인 원조 위주로 관계를 맺어왔던 아프리카를 경제 파트너로 삼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장관에 앞서 '경제수장' 재무장관이 먼저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된 이유입니다.

미국은 이런 태도 변화가 중국과 러시아를 의식한 것임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다보스 포럼에 불참했던 옐런 장관은 아프리카 방문에 앞서 중국 류허 부총리를 만나기 위해 포럼이 열리는 스위스 취리히를 깜짝 방문했습니다. 류 부총리와 개발도상국에 대한 중국의 부채 탕감 문제를 논의했는데 다분히 아프리카를 염두에 둔 의제였습니다.

중국이 경제적 투자 명목으로 아프리카에 빌려준 돈이 결국 '빚의 함정(debt trap)'에 빠뜨리고 있다는 게 미국의 주장입니다. 옐런 장관은 잠비아에서 수행기자단에 "아프리카의 부채 부담을 조속히 줄여줘야 한다"며 " 그러지 않으면 불안정과 전쟁, 테러, 이민 등 부정적 파급효과가 생겨 채무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막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아프리카에 잔뜩 투자한 중국의 경제적 이득과 추가 투자는 막고, 아프리카의 환심은 미국이 사겠다는 전략입니다.


■ 中, '빚의 함정' 비판에도 "시진핑 3기, 포기는 없다"

옐런 장관보다 일주일 앞서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아프리카를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말 '시진핑 3기'의 외교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첫 해외순방이었습니다. 중국 외교부장은 매년 첫 해외순방으로 아프리카를 찾습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입니다. 중국이 그간 아프리카에 들여온 공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올해 방문에선 그간 쌓인 중국과 아프리카의 굳건한 관계가 유독 강조됐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그간 " 아프리카에 6,000km 이상의 철도, 6,000km 이상의 도로, 20개 가까운 항구, 80개 이상의 대규모 전력시설을 건립하고, 130개 이상의 병원과 의료원, 170개 이상의 학교, 45개의 스포츠 경기장, 500개 이상의 농업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일일이 열거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인용)

중국은 2000년대부터 대 아프리카 원조에 박차를 가해왔습니다. 서방국가들과는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서구식 원조가 무상 원조를 기반으로 한 구호에 집중돼 있었다면, 중국의 원조는 광산과 철도 같은 인프라 건설에 초점을 뒀습니다.

기반은 통 큰 대출이었습니다. 신용이 낮고 재무상태가 좋지 않아 대외 투자를 받기 힘든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돈을 퍼줬습니다. 부패하거나 독재정권이 들어섰다는 이유로 서구에선 지원을 거절당했던 국가들도 중국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공짜가 아닙니다. 인프라 구축에 중국산 제품을 쓰고 중국 업체가 참여했습니다. 현재 아프리카의 대중국 대출금 총액은 2020년 기준으로 835억 달러, 우리 돈 102조 원 수준입니다. 전체 아프리카 대출액의 12%, 20년간 5배가 늘었습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11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무사 파키 마하마드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과 회담했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아프리카의 경제 기반을 중국화하고, 이곳에 군사·안보적 거점도 마련하는 게 중국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무작정' 투자가 가져온 딜레마도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채무국이 빚더미에 앉거나 상환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빚을 못 갚으면 주요 자산의 운영·소유권은 중국에 넘어갑니다. 대표적 나라가 잠비아입니다. 대외 부채가 173억 달러(약 21조 원)인데 이 중 3분의 1이 넘는 금액이 중국에 진 빚입니다.

중국은 잠비아와 부채 협상 중이지만 진전은 더딥니다. 아프리카에서 인기를 유지하고 싶었던 중국은 지난해 8월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를 일부 탕감해주겠다고 밝습니다. 막대한 회수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건 중국에도 큰 부담입니다. 애초에 마구잡이식 투자를 한 대가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멈출 계획은 없어 보입니다. 중국이 아프리카를 빚의 함정에 빠뜨리고 있다는 미국의 비판에 잠비아 중국 대사관은 "미국 자국의 채무부터 처리하라"며 날을 세웠습니다.

■ 전통의 우방 '러시아'도 갔다…전쟁 지지 확보 총력

이런 가운데 전쟁이 한창인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아프리카를 방문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이래 두 번째 아프리카 순방입니다. 올 7월 말 러시아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열리는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방문 성격입니다.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냉전 시절 이들 국가의 식민지 독립을 지원하며 시작된 관계는 러시아 용병의 아프리카 파견, 러시아 무기 구매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아프리카가 수입하는 무기 절반이 러시아산입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아프리카 24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거부했습니다. (16개국 기권, 7개국 불참, 1개국 반대). 나라 국력과 관계없이 모두 동등한, 국제기구에서의 한 표들의 힘은 컸습니다.

이번에도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데 총력을 다했습니다. 러시아와 오래 우호 관계였던 남아공이 가장 시원하게 화답했습니다. 두 나라는 중국까지 더불어 다음 달 17~27일까지 합동 군사훈련을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훈련이 한창인 다음 달 24일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러시아가 국제 '왕따'가 아님을 보여줄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중국 역시 아프리카와의 관계발전과 군사외교 재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 통신은 "미국이 아프리카 국가들뿐 아니라 아시아, 남미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외국 정치인 가족의 자산을 위협해 레드라인을 넘고 있다"는 순방 중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예전 식민시대처럼 서구 국가들에 의존하도록 만들려 한다"며 러시아와 함께 발맞춰달라고 가는 곳마다 설득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6일 앙골라 루안다에 있는 앙골라 초대 대통령 안토니오 아고스티노 네토의 묘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사진=러시아 외무부 트위터)


■ 세계 분열 무대 된 '검은 대륙'…아프리카의 선택은?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대립을 이어가면서, 아프리카는 다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국이 중국·러시아를 따라가는 입장입니다.

워낙 중국과 러시아가 닦아온 텃밭이 견고한 데다 미국이 표방하는 인권 중시와 부패 척결 등은 아프리카 많은 나라 정권에는 부담되는 요구입니다. 워싱턴의 금리 인상 정책이 개발도상국 경제에 더 많은 짐을 얹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진정한 파트너가 될 거라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요구도 옐런 장관에게 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습니다. 옐런 장관은 "솔직히 어떻게 장담할지 모르겠다"고 로이터 통신에 답했다고 합니다.

몸값이 높아지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선택지는 넓어집니다. 다시 강대국의 각축장이 될 거라는 우려와 함께 일부 국가에선 패권 전쟁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입니다. 남아공국제문제연구소의 스티븐 그루즈드 연구원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남아공과 중국, 러시아의 군사훈련을 "남아공이 독립 국가이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외교를 할 거라는 표현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아프리카에 쏟아지는 관심은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일본 역시 지난해 8월, 아프리카에 3백억 달러(36조 8천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중국의 아프리카 장악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도 26일부터 나흘간 남아공과 보츠와나를 방문합니다. 2023년이 시작되자마자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각국의 공세, 앞으로 더 빨리 나뉘게 될 세계 지형의 예고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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