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차이나 트렌드] 일본 무인양품도 백전백패…상표권 뺏은 中 짝퉁 주인 행세에 운다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안의 무인양품 매장. 침구, 옷, 수건, 화장품, 문구, 주방용품, 봉제 인형 등등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그동안 보아온 무인양품 매장 분위기나 제품 디자인과 뭔가 다르다. 분명 매장 입구에 한자로 ‘무인양품’이라 써 있고 제품에도 ‘무인양품’이라 쓴 라벨이 붙어 있는데도 말이다.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은 1980년 탄생한 일본의 대표적인 생활용품 브랜드로, 침구·옷·식기·가구·문구·식품·화장품·여행용품·집까지 일상생활에서 쓰는 거의 모든 물건을 판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간결한 디자인의 제품이 이 브랜드의 인기 비결이다. 2022 회계연도가 끝난 지난해 8월 말 기준, 일본에서 493개, 힌국 포함 해외 30여 국가에서 579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무인양품을 운영하는 모회사 료힌게이카쿠의 2022 회계연도 연매출은 4961억7100만 엔(약 4조6900억 원)에 달한다.
무인양품의 해외 매장 중 약 40%인 240여 개가 중국에 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쇼핑몰 안의 무인양품 매장은 포함되지 않는다. 진짜 일본 무인양품이 아니라 상표만 같은 중국의 가짜 무인양품이기 때문이다.
◇ 원조 MUJI 無印良品 vs. 짝퉁 无印良品 Natural Mill
중국 짝퉁 무인양품 매장의 간판을 다시 보면 차이가 있다. 간판에 쓰인 한자는 무인양품(无印良品). 첫 글자 ‘무’의 한자 표기가 다른데, 중국 무인양품은 ‘無(무)’를 중국 간체자(无)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진짜 무인양품 역시 웨이신·웨이보 등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중국 간체자 표기(无印良品)를 쓴다.
명확히 다른 부분은 영문 표기다. 일본의 진짜 무인양품은 영어로 ‘MUJI(무지)’인데, 중국 짝퉁 무인양품의 영문 브랜드명은 ‘Natural Mill(내추럴 밀)’이다. 진짜 무인양품 간판은 ‘MUJI 無印良品’, 가짜 무인양품 간판은 ‘无印良品 Natural Mill’로 돼있다. 영문 표기가 다르니 진짜와 가짜가 확실히 구분될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국인 대다수는 외국 브랜드라 해도 원래 외국어 브랜드명보다는 중국화된 브랜드명에 더 익숙해져 있다. 맥도날드를 마이당라오(麥當勞), KFC를 컨더지(肯德基), 버거킹을 한바오왕(漢堡王)이라 부르는 나라가 중국이다.
매장 안은 구분이 더 혼란스럽다. 계산 카운터 벽면에 붙은 브랜드명은 진짜 무인양품과 한자 표기(無印良品)가 똑같다. 침구류는 체크 무늬 이불 커버라든가 패키지라든가 진품과 꽤 흡사하다. 침구류 제품 라벨은 표기법이나 디자인을 아예 베끼다시피 했다. 다만 색조 화장품의 조악한 패키지 디자인과 ‘내추럴 밀’이란 이상한 로고가 이곳이 진짜 무인양품이 아닐 수 있다는 강한 기운을 뿜어낸다.
중국 상점·식당 리뷰 온라인 플랫폼인 다중뎬핑(大衆點評)엔 무인양품인 줄 알고 갔다가 속았다는 피해담이 쌓여 있다. “이 무인양품은 그 MUJI 무인양품이 아니다, 여기가 바로 ‘산자이(山寨, 모조품을 뜻함)’ 가게다” “MUJI와 관계 없는 국내(중국) 상점일 뿐이다, 헷갈리지 마라” “엄마가 왜 여기서 무인양품 회원카드를 쓸 수 없는지 물어봐서 알아보니 가짜였다, 이렇게 후안무치한 가게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하다” “판매원이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 뗀다, 개명해라” 등의 후기가 줄줄이 달려 있다. 간혹 “가격이 합리적이다”처럼 좋은 평도 보인다.
◇ 중국서 상표권 뺏기고 소송서도 잇단 패소
일본 무인양품은 중국 짝퉁 브랜드와 몇 년째 중국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결과는 매번 원조의 패배다. 중국 국내외 법조계에선 외국 회사인 무인양품이 중국에 진출할 때 상표권 보호 전략이 허술했다는 평을 내놓는다. 이 때문에 가장 큰 해외 시장에서 손실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무인양품은 2005년 중국 시장에 공식 진출했다.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이미 1999년 중국에서 상표권(트레이드마크) 등록을 신청했다. 45개 류(클래스)로 나눠진 중국 상표권 분류 시스템에서 제16, 20, 21, 35, 41류 상표권을 등록했다. 가정용 패브릭(직물류) 항목인 제24류는 상표권 등록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이게 추후 지식재산권 분쟁의 빌미가 됐다.
2001년 중국 남부 섬 하이난성의 ‘하이난난화실업무역공사’란 회사가 면직물, 수건, 침대 시트, 베개 커버, 이불 커버 등을 포함하는 제24류 항목에 무인양품(无印良品) 상표를 등록하고 사용을 승인 받았다. 중국 기업이 해당 항목의 상표를 선점한 것이다. 2004년 7월, 이 회사는 2000년 설립된 베이징몐톈방직품(北京棉田紡織品 Beijing Cottonfield Textile Corporation 베이징 코튼필드)이란 회사에 상표권을 양도했다. 상표권을 손에 넣은 베이징 코튼필드는 2011년 ‘베이징 무인(无印良品 Natural Mill)’을 설립하고 중국에서 관련 상표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무인양품은 하이난 회사의 제24류 상표권 등록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중국 최고 심판 기구인 최고인민법원은 2012년 이를 기각했다. 2001년 하이난 회사가 상표권을 등록하기 전에 중국에서 일본 무인양품의 패브릭 제품(제24류)이 사용됐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15년 4월, 베이징 코튼필드는 무인양품 중국 법인과 일본 모회사 료힌게이가쿠를 상대로 중국에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베이징 코튼필드는 무인양품이 중국에서 이불 커버, 침대 시트, 수건, 담요 등 패브릭 제품에 ‘무인양품’ 상표를 사용해 자신들이 가진 제24류 상표권을 침범했으며, 이는 불공정 경쟁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무인양품 입장에선 적반하장 격인데, 2017년 베이징지식산권법원은 중국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무인양품이 중국에서 제24류에 속하는 패브릭 제품에 무인양품 상표를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피고인 진짜 무인양품을 향해 원고인 베이징 코튼필드에 40만 위안(약 72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무인양품 중국 법인과 료힌게이가쿠는 항소했으나, 2019년 중국 고등법원은 2017년 베이징지식산권법원의 판결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무인양품을 향해 상표권 침해로 그동안 베이징 코튼필드가 입은 부정적 영향을 상쇄시킬 성명을 내라고 했다. 일종의 공개 사과 명령이다.
궁지에 몰린 무인양품은 성명을 내며 “무인양품은 중국 본토에서 거의 모든 유형의 제품에 상표권을 등록했는데 텍스타일은 제외됐다”며 “무인양품 중국 상표권이 다른 회사에 의해 무단 점유됐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 문장 때문에 무인양품은 또 한 번 송사에 휘말렸다. 무인양품은 상표권을 무단 점유한 기업명을 특정하지 않았으나, 베이징 코튼필드는 무인양품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무인양품이 대중이 베이징 코튼필드의 직물 제품이 모조품이라고 오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무인양품은 이 소송에서도 졌다. 2021년 7월,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법원은 무인양품이 2019년 고등법원의 판결에 배치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결론 내렸다. 무인양품이 발표한 성명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따라서 원고인 베이징 코튼필드의 신뢰도와 제품 평판을 훼손했다고 봤다. 법원은 무인양품을 향해 경제적 손실 보상으로 베이징 코튼필드에 40만 위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판결 내용은 2021년 11월 공개됐다.
◇ 中 상표권 무단 선점 악명…한국 기업도 피해 수두룩
지금도 무인양품은 중국에서 판매하는 가정용 패브릭 제품엔 ‘무인양품’이란 상표를 쓰지 못하고 있다. 무인양품은 지난해 6월 중국 최대 배달 플랫폼 메이퇀(Meituan)과 손잡고 1시간 이내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메이퇀 앱에 올라온 판매 상품을 보면, 침구류나 수건 등 가정용 패브릭 제품군엔 ‘MUJI’란 영문 브랜드명만 써 있다. 나머지 모든 제품군엔 ‘无印良品 MUJI’란 중·영문 브랜드명을 함께 표기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 익히 알려진 무인양품도 중국에선 속수무책이다.
중국의 상표권 무단 선점과 지식재산권 침해는 악명 높다. 중국 특허 제도는 선출원주의(가장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특허권을 주는 방식) 기반이다. 상표 브로커가 외국에서 잘나가는 브랜드나 뜰 것 같은 상표를 중국에 먼저 등록한 후, 해당 브랜드가 실제 중국에 진출하려고 하면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상표권을 되사가라며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곤 한다.
특허청 집계에 따르면, 2017~2021년 중국에서 한국 브랜드 상표가 무단 선점 또는 도용된 사례는 1만 건 이상이다. 2017년 977건, 2018년 1666건, 2019년 1486건, 2020년 3457건, 2021년 2922건으로 집계됐다. 굽네치킨, 설빙, 파리바게뜨 등이 중국에서 상표 선점 피해를 봤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캐릭터 디자인 브랜드 오롤리데이 같은 신생 회사가 집중 타깃이 됐다. 상표 사냥꾼이 무신사 같은 한국 온라인 편집숍에 입점한 신생 브랜드의 상표를 중국에 싹쓸이 등록하기도 한다.
영국 로펌 챔버스앤드파트너스는 “이미 유명한 브랜드라 하더라도 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땐 명확한 지식재산권 보호 전략이 필요하다”며 “무인양품의 사례에서 보듯, 선출원주의 국가인 중국에선 상표권을 가급적 빨리 등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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