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맞은 교황, 입구엔 노숙자, 공중 매달린 말…리움미술관 '난리'

김일창 기자 2023. 1.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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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전시로 가장 논쟁적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WE'展
"아티스트 말 듣지 말고 자의적 해석"…7월 16일까지 무료 관람
리움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위'(WE)가 시작했다. 사진은 카텔란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99년작 '아홉 번째 시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처음 제작할 당시 서 있는 조각이었으나 카텔란이 힘이 없다고 생각해 운석을 떨어뜨려 넘어뜨렸다. 2023.1.30/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미술관 출입문 옆에 노숙자가 누워있다. 로비에는 비둘기들이 여기저기 앉아있고, 축 늘어져 있는 말은 공중에 매달려 있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사내아이는 무릎을 꿇고 벽을 응시하고 있다.

경찰관 두 명은 거꾸로 서 있고, 깨진 바닥을 뚫고 한 남성이 손과 고개만 내밀고 있다. 뜬금없이 놓인 냉장고 위칸에는 한 여성이 쭈그려 앉아 있고, 검은색 성조기에는 총이 난사돼 있다. 주름이 가득한 하얀색 아홉 개의 조각이 바닥에 널려있으며, 검은색 화강암에는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지금껏 패한 경기 기록이 기록돼 있다. 십자가가 꽂힌 봉을 잡은 교황은 운석에 맞아 붉은색 카펫 위에 쓰러져 있다.

그리고 커다란 벽에 덕테이프로 고정한 노란색 생바나나가 있고, 전시장 높은 곳에 걸터앉은 한 소년이 이따금 드럼을 '탕탕탕' 두드린다.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이자 마르셀 뒤샹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동훈과 준호'(노숙자), '유령'(비둘기), '노베첸토'(말), '그림자'(냉장고), '그'(아돌프 히틀러), '밤'(검은 성조기와 총탄의 흔적), '프랭크와 제이미'(거꾸로 서있는 경찰관 둘), '모두'(아홉 개의 대리석 조각), '아홉 번째 시간'(누워있는 교황), '코미디언'(덕테이프로 고정된 생바나나) 등의 작품명을 갖고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대부분 제목이 없다(무제).

리움미술관은 31일부터 7월16일까지 카텔란의 대규모 개인전인 '위'(WE)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명 '위'는 두 남성이 가지런히 침대에 누운 작품의 이름에서 따왔다.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 '위'(WE)의 전시장 모습. 박제 말 '노바첸토'와 회화 작품 '아버지'가 보인다. 2023.1.30/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이번 전시는 지난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마우리치오 카텔란: 올'(Maurizio Cattelan : ALL) 이후 최대 규모의 카텔란 전시다. 조각과 회화 등 그의 작품 총 38점이 미술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총 세 개 층에서 전시된다. 구겐하임 회고전 이후 개인전도 연 카텔란은 그때마다 적게는 1점, 많아야 2~3점의 작품만 출시할 정도로 출품작 수가 적었다. 이번 전시가 대규모 회고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카텔란은 덕테이프로 붙인 생바나나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2019년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했는데 12만달러(현재 기준 1억4700여만원)에 팔렸다. 당시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써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린 일, 그러나 다시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됐고 몰려든 인파로 부스 운영이 어려워지자 결국 작품을 내린 갤러리의 선택까지, 논란은 계속됐다. 남성용 변기를 90도로 세워 '샘'이란 제목을 붙인 마르셀 뒤샹과 어딘가 비슷하다.

카텔란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미술계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자신을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한 배경이다. 이 미술계의 침입자는 현대미술의 카르텔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특유의 블랙유머로 예술, 사회, 정치 등 전반적인 가치 체계를 뒤틀고 부수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품의 해석과 느낌은 관람객의 몫이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이 항상 강조하는 것은 절대 아티스트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라며 "당신이 본 것을 토대로 해석해달라, 특히 자기의 작업인 경우에는 더 그렇게 해달라고 계속 강조한다"고 전했다.

그래도 몇몇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을 안다면 작품을 해석하고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한국을 찾았다.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꼽히는 그의 작품 '그'(Him)가 전시된 모습. 2023.1.30/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히틀러를 사실적으로 '축소'한 2001년작(作) '그'(Him)는 카텔란이 스웨덴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 의뢰를 받은 후 제작한 작품이다. 카텔란은 왜 히틀러를 조각하기로 했을까. 김성원 부관장은 "스웨덴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나라였는데, 중립국이면서도 뒤에서는 나치를 굉장히 도왔다고 한다"며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나치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복잡하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스웨덴에서 전시를 하게 됐고, 히틀러를 이곳에서 전시하게 된다면 독일이나 유럽 다른 나라에서 기대하기 힘든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작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넘어져 있는 교황을 표현한 1999년작 '아홉 번째 시간'도 비슷한 맥락이다. 1999년 작품을 제작할 당시 교황은 요한 바오르 2세(재위 1978~2005)다. 이 요한 바오르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져 있는 모습인데, 당초에는 서 있는 조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에 힘이 없다고 느낀 카텔란이 운석을 구해다가 작품에 떨어뜨렸고 그대로 쓰러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1999년 스위스의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카텔란은 스위스가 스웨덴처럼 중립국이지만 유럽의 안전을 위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비판하는 의도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특히, 그 표현을 바티칸 시국의 원수이자 교황을 넘어뜨리는 모습으로 표현해 모든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톨릭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의 작품에 대한 반응이 다른 점도 카텔란의 의도였을지 모른다.

2층 전시장 한가운데 나란히 누워있는 아홉 개의 대리석 조각 작품 '모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탈리아 대표 대리석인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든 이 작품을 마주하면 천에 덮여 있는 시신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전쟁과 지난해 이태원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연상된다. 아홉 개의 얼굴 없는 대리석 조각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로, 보는 각자에게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화강암에 새겨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대 패배 기록을 담은 작품은 축구종가 영국의 런던에서 전시될 당시 영국민들의 자존심을 상당히 건드렸다고 한다. 런던 전시를 제안받은 카텔란의 일종의 '역습'인 셈이다.

WE 전경 5_Courtesy of Maurizio Cattelan_사진 김경태 Kim Kyoungtae (리움미술관 제공)

하얀색 벽에 수많은 테이핑으로 고정된 한 남성을 촬영한 작품 '무제'도 제작 배경이 흥미롭다. 카텔란의 작품 거래를 담당한 이탈리아 갤러리스트 마시모 드 카를로가 카텔란에게 밀라노 전시를 제안했는데, 카텔란은 조건으로 마시모의 작품화를 내걸었다. "당신(마시모)이 테이프로 벽에 고정돼 3시간 동안 있으면 전시를 하겠다"는 것. 마시모는 이에 응했고 정말 갤러리 벽에 테이프로 고정된 채 3시간을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작품이 바로 이 '무제'다. 리움 측은 작가와 그의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고, 그 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갤러리스트가 주도권을 잃은 채 관객 앞에 전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마시모는 3시간을 매달린 후 정신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꾸로 선 두 경찰관을 표현한 '프랭크와 제이미'는 9·11 테러 직후 뉴욕 경찰의 모습에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을 연상케 하고, 나아가 테러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의 실패를 꼬집는 작품이다. 성조기를 검게 표현하고 카텔란이 직접 총을 쏴 만든 '밤'(2021년작)은 얼핏 보기엔 밤하늘의 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배경을 알게 되면 지워지지 않는 국가적 트라우마와 희망적인 틈을 동시에 생각하도록 관람객을 이끈다.

김성원 부관장은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하고도 심각한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 온 작가"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도발적인 익살꾼인 카텔란의 채플린적 희극 장치가 적재적소에 작동되는 작품들을 마주하며 공감, 열띤 토론 그리고 연대가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와 연계해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다층적으로 조망하는 다수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시 기간 카텔란의 작업 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아티스트 토크(31일 오후 4시)와 전시 기획의도와 주요 대표작을 소개하는 큐레이터 토크(김성원 부관장, 3월9일 오후 4시)가 예정되어 있다.

카텔란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작가연구 강연 시리즈에 김영민(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동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임근준(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이 강연자로 참여한다.

이외에 글쓰기를 매개로 작품을 재해석하는 장혜령(소설가, 시인)의 이미지 쓰기 워크숍과 카텔란이 기획·출간한 잡지와 출판물을 열람할 수 있는 리딩룸, 예술 출판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보는 리딩룸 세미나도 진행될 예정이다.

관람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또는 현장발권으로 가능하다. 다만 현장발권은 대기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우리_2010_나무, 유리섬유, 폴리우레탄 고무, 옷, 신발_78.5x151x80cm (리움미술관 제공)
코미디언_2019_생 바나나, 덕테이프_가변크기_Courtesy of Maurizio Cattelan_사진 김경태 Kim Kyoungtae (리움미술관 제공)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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