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과학과 만나다]⑯ ‘청담동 주식부자’ 부모 살해범 찾아낸 운동화 자국… AI가 찾는 시대 온다
DNA·지문 없을때 유용… 범인 동선·음주 여부 등도 유추
경찰청 DB에 등록된 족흔적 8만개… AI 자동분석 개발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세를 얻다 불법 주식거래 등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이희진씨 부모가 2019년 3월 살해됐다. 이씨 어머니는 안양 자택에서, 아버지는 평택의 한 창고에서 발견됐다.
현장에 파견된 과학수사요원이 수집한 증거인 족흔적(足痕跡)은 범인을 잡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족흔적이란 사람 발에 의해 인상된 흔적으로 신발흔·양말흔·맨발흔 등 보행흔적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사건 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신발 자국을 일컫는다.
경찰은 평택 창고에서 발견된 족흔적 11점을 분석해 8점에 대한 신발 종류와 브랜드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중 하나는 나이키 운동화였고, 이러한 사실을 전달받은 수사관은 당시 용의자 중 하나였던 김다운이 직접 신은 나이키 신발을 확보해 경찰청 법과학분석계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결과 현장에서 발견된 족흔적과 김다운이 실제 신은 나이키 신발의 밑창 모양이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발 크기도 일치했고, 밑창이 찢어지거나 특정 부위가 마모되지 않았던 점도 같았다. 경찰은 김다운이 이씨 아버지가 발견된 평택 창고에 방문했다고 보고 시신 발견 이튿날 그를 검거한 뒤 집중수사를 벌였다.
경찰 수사 결과 김다운은 1년 전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고, 강도살인·사체유기·강도음모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다운의 유죄를 입증한 결정적 증거는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DNA와 시신이 발견된 아파트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이었지만 사건 발생 초기 수많은 용의자 중에서 김다운을 유력 용의자로 분류할 수 있게 한 것은 족흔적이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작년 12월 한국인증기구(KOALAS)로부터 족윤적(족적과 윤적, 윤적은 바퀴자국) 감정법에 대한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으면서 족흔적 분석이 주요 수사 기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족흔적은 지문·DNA처럼 범인을 밝혀낼 결정적 증거인 ‘스모킹건’이 되기는 어렵지만, 이씨 부모 살인사건에서처럼 수사 초기에 용의자 범위를 좁혀 빠른 수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족흔적, DNA·지문 한계 보완... 공범·음주 여부·동선 유추 가능”
경찰 과학수사요원으로 20년 넘게 일했던 이선열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경위는 “구속 피의자에 한해 DNA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로 범인을 잡을 수는 있다”면서도 “DNA가 없고 지문도 없으면 결국 과학수사요원이 형사한테 조언해줄 수 있는 수사 방향을 족흔적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문의 경우 장갑을 착용하면 한계가 있다”며 “지문을 채취한다 하더라도 감정서가 나올 때까지는 시일이 한참 지나기 떄문에 그 시간에 범죄자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범죄 현장에 남겨진 신발 자국 분석으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범인이 범죄 현장에서 신었던 신발의 종류·크기·브랜드 등이다. 운동화, 구두, 장화 등 종류를 분류할 수 있고 운동화라면 나이키, 아디다스 등 특정 브랜드 확인이 가능하다.
수사관들은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피의자 추적에 나선다. CCTV에 찍힌 용의자가 신은 신발이 족흔적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지, 유력 용의자가 같은 브랜드의 신발을 갖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식으로 수사망을 좁힌다.
족흔적 분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범인이 신었던 신발 종류뿐만이 아니다. 사건 현장에 종류가 다른 여러 모양의 신발 자국이 찍혀 있다면 공범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현장에 찍힌 신발 자국을 따라가면 범인이 어디로 침입한 뒤 빠져나갔다는 동선 파악도 가능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거 사건에서 채취된 족흔적과 새롭게 발생한 사건 현장에서 나온 족흔적이 일치한다면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정서 피고인 유죄 입증의 핵심 증거로 채택되기는 어렵지만, 초기 수사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정희 경찰청 족윤적감정팀장(행정관)은 “족흔적으로 성별 구별이나 연령은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며 “신발 밑창의 특정 지점만 마모가 되어 있다면 걸음걸이를 유추할 수 있고, 보행흔적이 고르지 않으면 음주 여부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족흔적 DB에 8만건 등록... AI 기반 자동분석 시스템 개발 착수
족흔적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중에 유통됐거나 유통 중인 신발 밑창 모양을 모아 놓은 데이터베이스(DB)다. 지난 17일 기준 족윤적감정시스템(FITS)에 등록된 신발 개수는 8만1125개다. 경찰청이 직접 신발회사를 통해 밑창 등의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일종의 수작업 방식으로 이뤄진다.
과학수사요원 등은 현장에서 확보한 족흔적과 DB에 등록된 신발 밑창 모양을 비교해 신발 종류를 확인한다. 족흔적 상단은 빗살무늬, 하단은 동그라미 모양이라면 같은 특징을 가진 신발들을 1차로 추려낸 뒤 무늬와 무늬 사이의 간격이 일치하는지 등을 직접 분석하는 식이다.
DB에서 발견되지 않는 족흔적이라면 시중에 나와 있는 신발 밑창 모양을 하나하나 찾아내 비교·대조해야 해 감정에 수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많은 정보를 미리 확보할수록 범인의 신발 종류가 무엇인지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2000년 이전만 하더라도 족흔적 검색 시스템은 물론 전산화된 DB도 없었다. 현장에서 채취한 족흔적이 어떤 종류의 신발인지 확인하려면 과거 다른 사건의 수사기록을 일일이 찾아보거나 신발매장을 방문해 직접 비교·대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DB가 구축되고 FITS까지 만들어지면서 족흔적 분석이 한층 수월해졌다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경찰은 올해 ‘폴리스랩 2.0′ 과제로 10억원을 투입해 인공지능(AI) 기반 족윤적 자동검색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사람이 직접 분석하기 전 인공지능이 한 차례 더 분석을 해주기 때문에 감정 속도와 전문성이 향상될 전망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이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족윤적 ‘1:N 감정(사건 현장에서 나온 족흔적과 DB에 등록된 족흔적을 일대다로 비교하는 것)’을 진행하고 있어 책임이 막중하다”며 “족윤적 감정관 인증제, 해외 숙련도 테스트, 전문 위탁교육 등으로 감정관의 전문성을 향상하고 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연구개발을 지속 추진해 흔적 감정 분야에서 우뚝 서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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