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앞 '미끄럼틀' 놓아보자…파리가 '저출산' 韓에 주는 교훈

파리=최경민 기자 2023. 1.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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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다이어리] 7. 아이들 친화적 도시 - ①놀이터의 힘

[편집자주]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파리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과 전문가를 취재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파리 에펠탑 앞의 놀이터. 어른들은 낭만을 즐기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낭만의 도시 파리를 대표하는 두 관광 포인트는 에펠탑과 몽마르트일 것입니다. 프랑스의 수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두 곳입니다. 에펠탑과 몽마르트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시설물은 뭘까요? 다름아닌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입니다.
특별한 장소의 평범한 놀이터
에펠탑 놀이터는 '에펠탑 사진 맛집'으로 불리는 트로카데로 정원에 있습니다. 몽마르트 놀이터는 사크레쾨르 대성당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계단 입구에 위치해 있죠. 이들 놀이터에는 대단한 시설이 있지는 않습니다. 미끄럼틀, 그네 등 간단한 놀이기구로 구성돼 있는데요. 그냥 우리가 흔히 지나가다 보는 작은 놀이터 수준입니다.

이 '평범한' 놀이터는 에펠탑과 몽마르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별한' 효과를 낳습니다. 랜드마크를 부모와 아이가 모두 흡족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야 에펠탑을 여러 방향에서 감상하며 커피도 한 잔 마시는 게 재미라지만, 아이들에겐 그럴 리가 없죠. 아이들에겐 파리의 낭만보다 작은 미끄럼틀 하나가 더 즐거운 법입니다. 에펠탑과 몽마르트가 한 눈에 들어오는 놀이터의 존재로 인해 부모와 아이가 하나의 '가족'으로 이곳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는 이런 특별한 곳에 위치한 평범한 놀이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딸린 가족이 나들이를 갈 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명소를 가든 아이들이 즐길 놀이터가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앞 튈르리 정원에도, 생퇴스타슈 성당 앞 광장에도, 노트르담 대성당이 가장 잘 보이는 세느강 가에도 작은 놀이터가 있습니다.
파리 생퇴스타슈 성당 앞 광장의 놀이터/사진=최경민 기자
'아이들'의 시점으로 공간을 활용한다는 것
같은 장소에서 어른들은 낭만을 느끼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 수 있는 도시. 파리의 모습입니다 '가족'을 중요시하면서, '아이들' 역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배려하는 문화라고 느꼈는데요. 이와 관련해 소르본대 산하 기업가정신·지역·혁신 연구소(Chaire-ETI)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승훈 도시디자이너의 말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에펠탑 앞 놀이터와 같이 '아이들의 여가'를 위한 시설은 '가족 단위'의 생활을 보다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일단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따라올 수밖에 없죠. 노인들도 이곳에서 다른 세대들을 바라볼 것입니다.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곧 '가족단위'나 '사회적 이웃단위'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의 변화는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만 삶의 질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한 장소에 다른 목적을 임시적으로 부여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시설은, 키즈카페나 놀이공원과 같이 '타게팅'된 공간이 아닙니다. 도시 속 세대 간 간격을 줄여주고, 도시의 속도를 낮춰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더 발견하고, 조금 더 사람 중심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시점으로 공공 공간을 활용한다는 것은, 단지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닌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다른 세대와 접촉하고, 소통할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명소에서, 주변 이웃이 찾을 수 있는 활력있는 장소로 변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한승훈 Chaire-ETI 도시디자이너/사진=한승훈 제공
아이와 함께, 모두가 기쁨을 누리는 문화
아이들을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우대하고, 도시를 만들 때 아이들의 시점으로도 바라보며, 이를 통해 세대 간 소통과 통합을 이루는 과정이 파리 도시 디자인에 녹아있는 셈입니다.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2021년 기준 1.80명)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런 '문화'의 힘도 분명히 존재할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쁨을 누리는 문화' 말입니다.

실제 파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체류하면 이 문화의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에펠탑과 몽마르트 앞에 있는 놀이터는 이런 문화를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카페나 레스토랑을 가면 가장 큰 환대를 받는 게 아이들이고, 수많은 전시회장을 갔을 때 아이들을 위한 예술작품이 반드시 배치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출산율 하락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2021년 기준 0.81명)으로 시선이 돌려집니다. 부동산·일자리 문제 등도 원인일 수 있지만, 육아를 '징벌'처럼 인식하는 문화가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요?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국 도시들에 만연한 '노 키즈 존' 개념을 설명하면 이해하기도 힘들어합니다. 그렇게 세대와 가족을 갈라치고, 고립시키는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파리 몽마르트 입구에 위치한 놀이터. 가족 단위 방문객이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파리에서 30년여년 거주하며 자녀 둘을 키웠다는 백현주씨(이하 가명)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라 배척하는 차원의 '노 키즈 존'은 프랑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파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희선씨는 "파리에서 만약 '노 키즈 존'을 한다면 식당을 계속 꾸려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광화문광장과 남대문 앞에 놀이터를
이제 한승훈 디자이너의 "공간의 변화는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만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다시 주목해보겠습니다. 가족과 아이들을 둘러싼 우리의 문화에 문제가 있다면, '간단한 변화'부터 시작하는 게 답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에펠탑과 몽마르트 앞의 놀이터가 저출산에 시달리는 한국을 위한 '영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과 가족 중심의 도시 디자인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아는 '징벌'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문화가 생길 수 있는 것에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대문 앞 공터에 작은 미끄럼틀과 그네를 배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광화문광장 한 쪽에 아이들이 사시사철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경복궁·창경궁 안에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 놀이터를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게 '아이들을 위한 도시 디자인'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저출산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에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파리=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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