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택했던 美 아카데미, 박찬욱은 왜 외면했을까
박찬욱의 오랜 '오스카 징크스'…올해도 결국 못 깬 美의 벽
오스카, 가족·정치사회적 화두 선호…'기생충'은 모두 충족
"박찬욱 작품은 영화적…매니아적 경향 걍해"
亞 발전 견제한 아카데...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외신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예상을 깬 이변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칸이 사랑한 세계적인 감독 박찬욱. 그러나 아카데미는 박 감독에게 유독 박했다. 박 감독은 한번도 미국 영화상의 꽃으로 불리는 ‘오스카’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예외였다. 칸을 정복한 ‘헤어질 결심’은 그의 오랜 징크스를 깨 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견고한 오스카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칸과 오스카 모두의 선택을 받았던 것과는 다른 결과다. 그렇다면 ‘기생충’이 극복한 1인치 자막의 벽을 왜 ‘헤어질 결심’은 뛰어넘지 못했을까.
외신들 “아카데미의 무시” 일제히 발끈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APAS)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제95회 오스카 국제장편영화 부문 후보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독일), ‘아르헨티나, 1985’(아르헨티나), ‘클로즈’(벨기에) ‘EO’(폴란드) ‘더 콰이어트 걸’(아일랜드) 등 5편을 발표했다. 유력 후보였던 ‘헤어질 결심’은 지난해 12월 아카데미가 발표한 예비 후보 15편엔 이름을 올렸으나 최종 후보 명단에선 제외됐다.
우리나라가 오스카의 벽을 처음 뚫은 건 2020년 열린 오스카에서다. 당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함께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주요 트로피 4개를 들어 올렸다. 이듬해 열린 오스카에서도 한국계인 정이삭 감독의 미국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이 한국 여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외신들은 ‘헤어질 결심’이 ‘기생충’, ‘미나리’의 기적을 이을 것이라 예측했지만 후보에도 오르지 않자 의문을 표했다. 버라이어티는 “적어도 국제영화상 후보는 확실해 보였고, 박 감독의 깜짝 감독상 후보까지 거론됐다”며 “하지만 오스카는 그를 무시했다. 영화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두드러진 영화감독 중 한 명에게 오스카의 순간을 줄 기회마저 놓친 것”이라고 일침했다.
외신들이 이렇게나 발끈하는 것은 박찬욱이 칸 영화제에서 여러 번 수상해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드보이’(2003)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후,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아가씨’(2016)로 류성희 미술감독이 벌칸상(기술 스태프에게 수여하는 칸영화제 특별상)을 받은 뒤 ‘헤어질 결심’으로 지난해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쉽게도 박 감독의 작품은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박찬욱이 오스카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를 두고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이 표방하는 메시지와 스토리의 차이점을 들어 설명했다.
‘기생충’은 상류층 가족의 집에 하류층 가족이 취업해 들어간 뒤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가족’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세계의 화두로 떠오른 빈부격차와 계급갈등 문제를 조명했다. 오스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오스카는 가족·전쟁 등 사회적 메시지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라면서 “‘기생충’과 ‘미나리’는 모두 가족이 주인공인 작품이면서도 전쟁 및 독재 반대, 계급과 인종, 여성, 이민자 문제 등 정치 사회 이슈를 소재로 화두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헤어질 결심’은 고전 로맨스 영화다. 형사가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망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주요 스토리다. 윤 평론가는 “고전미를 추구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보편적 메시지를 중시하는 오스카는 좋아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 박찬욱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오스카가 자국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견제에 나선 것이란 추측도 있다. 오 평론가는 “양자경 주연의 아시아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11개 부문에나 오른 것이 또 다른 아시아권 영화에 대한 선택을 주저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할리우드가 다양성의 가치를 봉준호의 수상을 통해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면서 거꾸로 아시아 영화의 신장을 꺼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세계 영화의 ‘파워맨’으로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밸런스 컨트롤에 나선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한 영화의 수상 여부는 그 작품에 투자한 배급사와 기업이 업계에서 지닌 영향력도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의 수상은 배급사 CJ ENM과 이미경 CJ 부회장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덕도 컸다”며 “‘헤어질 결심’ 역시 CJ ENM 작품이고, 지난해 칸 영화제 수상 과정에서 CJ가 함께 쏟은 노고가 돋보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에서 CJ의 영향력이 이미 무시 못할 수준에 다다랐던 만큼, 수상까진 아니더라도 후보 지명은 어느 정도 당연시된 결과였는데 불발되어 상당히 아쉽다 ”라고 덧붙였다.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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