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의 섹스가 ‘뉴 노멀’이 되기 전에 [평범한 이웃, 유럽]

취리히·김진경 입력 2023. 1. 3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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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의 평범한 이웃, 유럽] 전신형 섹스돌 통관을 허용한다는 관세청 발표가 나왔다. 이슬람 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실상 허용됐다. 유럽과 미국은 섹스 로봇을 둘러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회사 어비스 크리에이션스의 섹스돌 구매 사이트 첫 화면. ⓒRealdoll.com

장안의 화제인 인공지능(AI) 챗봇 ‘챗GPT’에게 물었다. “나는 외로워. 대화하거나 섹스할 누군가가 필요해. AI 섹스 로봇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챗GPT가 답했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끼고 해결책을 찾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AI 섹스 로봇이 어느 정도의 우정이나 육체적 쾌락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인간관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외로움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이슈죠. 그걸 해결하려면 친구나 가족의 도움을 구하거나, 전문가를 찾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AI는 우리 삶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 같은 AI 비서, 넷플릭스 영상 추천, 휴대전화 얼굴 또는 음성 인식, 챗봇을 이용한 자동 고객 대응 시스템 등에 모두 AI가 쓰인다. 챗GPT는 챗봇 중에서도 현재 가장 발전한 형태다. 문제점이나 한계도 발견되지만 재미로 또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쓴다면 깜짝 놀랄 정도의 수준이다. 위의 답변에서 볼 수 있듯, 실제 인간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AI가 실제 인간의 영역을 넘보는 영역은 또 있다. AI 섹스 로봇이다. 섹스돌(‘리얼돌’은 특정 회사의 상품 이름이므로 이 글에서는 용어를 ‘섹스돌’로 통일한다)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전신형 섹스돌 통관을 허용한다는 관세청 발표가 나왔다. 2019년 섹스돌 수입 금지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 이후 3년 만이다. 2019년에는 세관에서 해당 제품을 폐기해 실제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이번 판결로 전신형 섹스돌이 처음 공식 수입될 것이라고 한다. 섹스돌은 일부 이슬람 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실상 허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논의가 있었다. 유럽, 미국 등에서 현재 진행 중인 논의는 섹스돌보다는 섹스 로봇을 둘러싼 것들이 많다. 이 글에서는 기존 섹스돌에 관련된 논점을 정리하고 섹스 로봇이 가져올 변화를 짚어본다.

우선 용어를 명확히 하자. ‘섹스돌은 인간과 비슷하고 해부학적으로 올바른, 의인화된 인형이다. 혼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성적 흥분을 일으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된다. 섹스돌에는 사용자가 혀나 성기를 삽입할 수 있는 적어도 하나의 구멍이 있다. 섹스 토이가 인체 일부분이 제한적으로 복제된 것인 반면, 섹스돌은 인간 몸 전체가 복제된 것이다. 섹스돌은 다양한 성(여성, 남성, 트랜스), 인종(백인, 아시안, 흑인), 체형, 피부, 머리카락, 눈 색깔 등으로 제작된다. 고품질 섹스돌은 고객의 다양한 기호에 맞춰 주문 제작되기도 한다. 다양한 재료(천, 고무, 실리콘, TPE·열가소성엘라스토머 등)로 만들어지며 가격도 천차만별이다’(Nicola Döring, ‘Sex Dolls and Sex Robots’, 2020).

최초의 섹스돌은 17세기 네덜란드 선원들이 오래 항해하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헌 옷으로 만든 인형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 유통되는 섹스돌에 가까운 상품이 처음 나온 건 1996년 미국 회사 어비스 크리에이션스가 출시한 ‘리얼돌’이다. 그 뒤로도 섹스돌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유럽에서 섹스돌 관련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뤄진 건 2010년대 이후 개인이 은밀히 사용하던 섹스돌이 성매매 업소에서 사용되면서부터다. 유럽 최초로 섹스돌을 사용한 성매매 업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루미돌(Lumidoll)’이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2017년 2월27일 바르셀로나 중심가 아파트 내에 문을 연 이 업소에서는 하나에 6000유로 이상인 섹스돌을 이용해 한 ‘세션’당 120유로를 받았다. 고객들은 섹스돌 이용 경험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했고, 이를 발견한 집 주인이 그런 용도로 집을 쓰는지 몰랐다며 세입자를 내쫓았다. 역시 소셜 미디어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 경찰이 이곳을 찾았을 때 집은 이미 비어 있었다. 새로 옮긴 업소의 주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고객이 이용 경험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것도 금지됐다. 바르셀로나 루미돌은 유럽 전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19년 10월, 이용주 전 무소속 의원(맨 오른쪽)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섹스돌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년 독일 도르트문트의 한 성매매 업소가 섹스돌을 이용해 영업을 시작했을 때도 독일 안팎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고객은 다양한 체형, 피부색, 머리카락 등을 가진 15가지 종류의 인형 중에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이 업소 주인 에블린 슈바르츠가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일본에서 섹스돌이 인기라는 뉴스를 TV에서 본 뒤 수입을 결정했으며, 고객은 대부분 사회성이 부족하고 실제 여성과는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남성들이었다고 한다. 독일 일간 〈빌트〉가 당시 이 업소를 다룬 기사에 붙인 제목은 ‘고무와의 섹스(Sex mit Gummi)’였다.

“아동 섹스돌은 수입 불가”

현재의 섹스돌은 ‘고무’ 수준을 벗어나 AI 섹스 로봇으로 진화 중이다. AI 섹스 로봇은 센서와 작동 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섹스돌과 다르다. 다양한 유형의 성격이 프로그래밍되고,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할 수 있다. 성적 행위와 관련된 제한적 움직임이 가능하고, 오르가슴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극에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현재 잘 알려진 상품은 앞서 언급한 미국 업체 어비스 크리에이션스가 내놓은 ‘리얼돌 엑스(RealDollX)’ 시리즈다. 모듈 방식으로 조립된 머리 안의 장치 덕분에 눈, 눈썹, 목, 입을 움직일 수 있다. AI 소프트웨어(X-Mode)를 통해 작동되는 이 로봇에는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친절함, 수줍음, 순진함, 지성, 유머, 관능성 등 12가지 성격 중 하나가 장착된다.

유럽에서 성매매 업소를 통해 섹스돌이 공론화된 이후 쟁점은 두 가지로 모아졌다. 첫째, ‘아동의 모습을 한 섹스돌을 써도 되는가’. 둘째, ‘섹스돌이 여성과 아동 대상의 성범죄를 예방할 것인가, 부추길 것인가’. 첫 번째 쟁점은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캐나다 등은 법규를 통해 아동 섹스돌을 엄격히 규제하고, 영국에서는 기소 가이드라인을 통해 아동 섹스돌의 수입·유통·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단순 소지는 처벌하지 않는다). 독일은 2021년 7월1일 발효된 법안에서 아동 섹스돌을 ‘아동의 신체 전체 또는 일부가 본질적으로 성행위 의도로 제작된 것’으로 규정하고 소유 및 판매를 금지했다. 위반 시 최대 3년(취득·소유) 또는 5년(거래)의 징역에 처해진다. 하지만 원칙이 정해져도 문제는 남는다. 섹스돌이 아동 형상임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한국에서는 2021년 11월 아동 섹스돌 수입이 불가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당시 문제가 된 사건의 섹스돌은 길이가 150㎝에 얼굴과 신체의 특징이 성인보다 어리게 표현됐다고 한다. 이 판단에는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미국 어비스 크리에이션스의 리얼돌 구매 사이트에 있는 인형 중 크기가 가장 작은 것은 147㎝이고 발 크기가 210㎜인데도 아동 섹스돌로 분류되지 않는다. 섹스돌에 교복을 입혀 판매하는 건 또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두 번째 쟁점은 좀 더 복잡하다. 섹스돌이나 섹스 로봇의 옹호자들은 인형 또는 기계를 상대로 가학적 판타지를 실현하는 일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이들은 섹스돌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설계될 수 있다는 점, 어떤 행위도 반발 없이 받아들인다는 점, 성적 지향이나 신체 능력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DEI(diversity·다양성, equality·평등, inclusion·포용)에 부응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2018년 스위스 일간 〈NZZ〉 기고문에서 인간의 공격적 욕망을 억누르면 그것은 더욱 공격적인 형태로 되돌아온다며 AI 섹스 로봇을 대상으로 한 가학적 행위를 옹호했다.

반면 반대자들은 강간 판타지 자체를 문제 삼는다. 로봇 강간이 실제 강간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본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상의 성차별 프로젝트(Everyday Sexism Project)’ 창립자인 로라 베이츠는 이렇게 주장했다. “강간은 성적 열망 행위가 아니라 폭력 범죄다. 강간범에게 (로봇이라는) 안전한 해방구를 마련해주는 건 살인범에게 사람 대신 피를 내뿜을 수 있는 인체 모형을 찌르라고 주는 것과 같다(2017년 〈뉴욕타임스〉 기고문).” 이 말은 일리가 있다. 영국의 로봇 윤리학자인 캐슬린 리처드슨은 섹스 로봇이 보편화되면 남성이 여성과 아동 모습을 한 로봇을 구입해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좇게 되고, 그래서 현실의 여성과 아동을 성적 대상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리처드슨은 2015년 섹스 로봇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 캠페인에서 그는 섹스 로봇 대신 ‘포르노 로봇’이라는 용어를 쓴다.

2019년 9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어느 쪽이 맞을까. 앞서 언급한 독일 성매매 업소 주인 슈바르츠에 따르면, 이 업소에서 섹스돌의 평균 수명은 반년 정도였다. 고객들이 섹스돌에 채찍질을 하거나 붕대로 전신을 꽁꽁 감싸는 등 가학적 행위를 해서 인형이 툭하면 찢어지고 부서졌기 때문이다. 섹스돌에 채찍질을 한 고객들은 꿈이 이루어져 만족했을까, 아니면 더 큰 자극을 원했을까. 성 판타지 가상 실현이 현실에서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고 결론이 나지 않았다.

챗GPT가 로봇과 결합하면?

가학적 행동과 별도로, 로봇과의 섹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인간 간의 섹스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영국의 미래학자 이언 피터슨은 ‘지능을 가진 로봇과의 섹스가 너무 좋아서 우리는 인간의 성행위를 얕잡아보게 되고, 이는 인류의 재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영국의 로봇학자이자 〈Love and Sex With Robots(로봇과의 사랑과 섹스)〉(2007) 저자인 데이비드 레비는 “2050년이 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로봇과 사랑하고 섹스하는 경험이 평범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레비는 고독한 이들, 사랑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게 로봇 파트너는 희망이라고,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매매의 여러 문제도 로봇 덕에 해결될 것이라 본다.

AI 섹스 로봇은 수많은 질문을 낳는다. 외로워서 섹스 로봇을 선택한 인간들이, 그 때문에 더 완전히 고립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요양원 노인이나 장애인 등 성생활의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섹스 로봇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챗GPT처럼 고도로 발달된 챗봇과 섹스 로봇이 결합될 경우, 사람들이 섹스 로봇을 연인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그 연인의 ‘로봇권’을 주장하는 이들도 나타나지 않을까. 로봇과의 섹스가 ‘뉴 노멀’이 되기 전에, 우리는 이 질문들에 답을 해야 한다.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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