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그렇게 될 줄 난들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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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는 개인의 목숨보다 집단의 승리가 중시되고, 생존 욕구보다 명령이 우선되는 시공간이다.
본능마저 거스르는 전장의 논리는 정의나 국가-민족 수호 등의 명분으로 지탱되고, 전공을 세운 이들이나 부상-사망자에게는 훈장 등의 국가적 예우로 보상을 한다.
반면 저 애국 이데올로기나 전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 뒤에는 수많은 보통의 병사, 두려움에 떨고 더러는 나약하다고 손가락질도 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전장의 병사들은 목숨과 함께 인격과 삶의 가치까지 심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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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는 개인의 목숨보다 집단의 승리가 중시되고, 생존 욕구보다 명령이 우선되는 시공간이다. 본능마저 거스르는 전장의 논리는 정의나 국가-민족 수호 등의 명분으로 지탱되고, 전공을 세운 이들이나 부상-사망자에게는 훈장 등의 국가적 예우로 보상을 한다. 반면 저 애국 이데올로기나 전쟁 영웅들의 화려한 무용담 뒤에는 수많은 보통의 병사, 두려움에 떨고 더러는 나약하다고 손가락질도 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특히 탈영병은 군법을 어긴 범법자이기 이전에 혼자 살자고 도망친 배신자로 찍힌다. 전장의 병사들은 목숨과 함께 인격과 삶의 가치까지 심판당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군 약 9만 명이 탈영했다. 그중 2만여 명이 군법회의에 회부돼 49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고, 딱 한 사람 에디 슬로빅(Edward Donald Slovik, 1920~1945) 이병은 실제로 처형당했다. 폴란드계 미국인인 슬로빅은 1944년 1월 징집돼 8월 제28보병사단 소총수로 유럽전선에 배치됐지만 죽기 싫어 탈영했다. 그는 지휘관에게 후방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했지만 외면당했고, 결국 탈영해 스스로 후방 부대에 자수했다. 그에겐 혼인한 지 1년도 안 된 아내가 있었다. 군법회의는 1944년 11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법관 9명 전원은 군 사기 진작과 탈영 방지를 위한 선고였을 뿐, 관행처럼 항소 과정에서 감형 받으리라 예상했다고 훗날 증언했다. 슬로빅은, 아이젠하워 사령관에게 보낸 감형 청원에도 불구하고 1945년 1월 31일 총살당했다. 아르덴-벌지 전투 참패로 미군이 큰 피해를 입고 탈영병이 속출하던 때였다. 불과 몇 달 뒤 유럽 전쟁이 끝났고, 군 당국은 민간인 살인 강간과 탈영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미군 2만7,000여 명 중 약 85%를 석방-감형했다. ‘슬로빅 신드롬’이란 감형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가혹하게 선고하는 경향, 그런 관행을 핑계 삼아 부당한 선고에 따른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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