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행의 뉴욕 드라이브] 뉴욕 50년만의 눈가뭄

뉴욕/정시행 특파원 입력 2023. 1. 31. 03:07 수정 2023. 12. 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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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일째 눈 안 내리는 날 지속… 썰매·스키장 제대로 영업 못해
미국 뉴욕시에 지난해 3월 9일 이래 326일째 눈이 안 오면서 반세기 만의 최장 눈 가뭄 기록을 깼다. 사진은 지난해 1월 눈이 내린 맨해튼 센트럴파크에 관광객과 시민들이 몰려든 풍경(위)과, 최근 센트럴파크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이다. 뉴욕 현지 매체들은 매일같이 '눈 가뭄 ***일째'라며 눈 안 온 일수를 집계, 뉴욕시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을 연출했던 눈을 무척 기다리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너무도 이상한 겨울이다. 어른들은 눈 치울 일 없어 좋지만, 썰매 타고 눈사람 만들기만 기다리는 손주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다.”

뉴욕 토박이인 60대 토머스씨는 최근 추적추적 비 오는 날 기자와 날씨 이야기를 나누다 이렇게 말했다. 요즘 뉴요커들 최대 화제는 ‘눈[雪]이 없어 섭섭한 겨울’이다. 통상 뉴욕시 일대에선 12월 초·중순 첫눈을 시작으로 큰 눈이 몇 차례 내리고 이듬해 3~4월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다. 겨우내 방수 기능이 있는 스노 부츠를 신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늦가을 같은 영상권 기온이 이어지면서 요즘은 영화에 나오는 새하얀 뉴욕의 겨울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에도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지난 19일 뉴욕시 맨해튼 타임스 스퀘어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모습. 뉴욕에선 올겨울 들어 기온이 거의 영상권에 머물면서, 눈발이 잠깐 날리다 싶다가도 곧 비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AFP 연합뉴스

뉴욕시에는 지난해 3월 9일 후 지난 29일(현지 시각)까지 326일째 눈이 내리지 않아 1973년 이후 반세기 만에 최장 ‘눈 가뭄’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에선 맨해튼 센트럴파크에 0.1인치(0.25cm)의 눈이 쌓여야 기상학적 적설량으로 집계하는데, 눈발이 날린 적이 서너 번 있었지만 금세 비로 바뀌었다. 뉴욕 역대 최장 눈 가뭄 기록은 2020년의 332일인데, 앞으로 7~10일은 눈 예보가 없어 1869년 기상 관측 이래 154년 만의 눈 가뭄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워싱턴 DC나 필라델피아 등 동부 해안 일대의 상황도 비슷하다. 겨울이 짧고 따뜻해지는 이상 기후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난동(暖冬)’을 불러온 것이다.

뉴욕시 내 썰매장이나 인근 스키장은 제대로 영업을 못 하고 있다. 대규모 스키장은 인공 눈을 뿌려놓았지만 “자연설과 달리 딱딱해서 싫다” “가뜩이나 온난화로 눈이 안 오는데 제조 과정에 탄소 배출이 많은 인공 눈까지 소비해야 하느냐”며 거부감 갖는 이가 많다.

지난 12월 미 중부 켄터키주에서 어린이들이 눈썰매를 타는 모습. 원래 눈이 많이 오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등 일명 'I-95 고속도로 통로'로 불리는 동부 해안엔 1월이 가도록 눈이 한 번도 안 오는 눈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대 ‘피해자’는 역시 아이들이다. 30대 주부 헤일리씨는 “두 아들이 스키 장비와 리프트권을 미리 사놨는데 아무래도 못 쓰게 될 것 같다”며 “겨울 놀 거리가 너무 없어 실내 워터파크 시즌권을 끊었다”고 말했다. 겨울방학이 짧은 미국 초·중·고교에는 큰 눈이 온 날 5일 이상 휴교하는 스노 데이(snow day) 제도가 있는데, 이 비공식 방학도 사라지게 됐다. 교사들도 “눈이라도 와야 좀 쉬는데…”라며 내심 섭섭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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