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오페라하우스 사태, 부산 시민이 우습나

강필희 기자 2023. 1. 31. 0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설계 부실” “무단시공이 문제”…책임 전가에 부산시는 팔짱
자체 감사로 진실규명 한계, 검경 수사 아니면 해법 없다

부산시장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고 자진 사퇴한 2020년 4월 23일은 온 부산 시민이 수치감에 얼굴을 숯더미에 묻은 듯 했던 날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날을 또다른 의혹과 불신의 날로도 기억한다. 바로 그날, 부산시가 북항 재개발 부지에 초고층 숙박형 레지던스 허가 도장을 찍어준 것이다. 북항을 독보적 해양관광 콘텐츠로 채워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재개발 사업이 해운대처럼 바다를 아파트 촌이 병풍처럼 둘러싸는 상황으로 변질되면 어쩌나 하는 경계심이 일던 참이다. 레지던스 허가는 선행절차가 마무리된데다 담당국장 전결사안으로 권한대행에게 보고됐다는 게 부산시 설명이지만, 허가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지 않은가.

3년 전 일을 소환한 건 최근 불거진 오페라하우스 사태 때문이다. 오페라하우스는 이 건물의 외형적 특징을 함축하는 전면부 설계와 시공 문제 로 공사가 몇 차례 중단됐다. 시공사는 “설계사가 제대로 된 설계도를 주지 않는다”고 하고, 설계사는 “시공사가 설계와 다르게 무단시공 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한데도 발주처인 부산시는 판단을 유보한 채 “일단 제3의 방식으로 공사부터 하고 보자” 한다. 최초 계획대로라면 5년 전 이미 개관했어야 하지만 준공 목표년도는 2025년으로 연기되고 공사비는 700억 원 가까이 불어났다. 이도 잠정치일 뿐 앞으로 돈이 얼마나 더 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토건 세력’이라는 말은 토목건설회사와 종사자를 뜻한다. 특히 민간에 대해선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자체 공공건물을 짓기도 하는 공무원을 포괄한다. 대형 공사나 건축엔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같은 절차가 무수히 수반되는데 이걸 원칙대로 수행하느냐 우회하느냐에 따라 수십억 혹은 수백억 원이 왔다 갔다 한다. 설계 변경 역시 공사비 증감에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토건 영역은 워낙 전문적이라 일반인들은 그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속으로 곪다가 터지면 그제서야 극히 일부 실태가 드러나는 법이다.

오페라하우스 사태만 해도 그렇다. 바다 쪽 건물 정면 설계 방식으로 지금까지 공식 거론된 건 트위스트 공법, 폴딩 공법, 스마트노드 공법 3가지다. 이해의 어려움은 있으나 시공사와 설계사의 책임 떠넘기기를 통해 최소한 각 공법의 난이도 격차를 짐작할 수는 있다. 트위스트는 애초 설계사가 공모에 당선될 때 내놓은 방식이다. 거의 예술작품 수준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런데 시공사는 공사 시작 직후 트위스트가 아닌 폴딩으로 바꾸자고 했다. 설계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다시 공모를 진행해 결정한 방식이 제3의 공법인 스마트노드이다. 결국 폴딩이 가장 쉽거나 일반적이고, 트위스트와 스마트노드는 난해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국내에는 트위스트나 스마트노드를 이 정도 규모의 건물에 적용한 사례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상식적인 의문이 생긴다. 트위스트 공법을 제안한 설계사는 이것이 정말 실물로 구현 가능하다고 보고 설계한 것일까. 설계사측이 시제품조차 만들지 못했다는 보도가 이미 나와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사실이라면 설계사는 실현 불가능한 초현실적인 설계를 내놨다는 말밖에 안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기는 시공사도 마찬가지다. 2018년 시공에 참여할 당시 이미 그들은 설계도를 봤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하려니 안된다며 쉬운 공법으로 바꾸자는 게 말이 되는가. 공사만 우선 따놓고 오리발 내밀겠다는 심산이었던가.

오페라하우스 공사 발주처인 부산시에선 공법 문제가 불거진 2019년부터 최근까지 건설본부장이 총 7번 갈렸다. 재임기간이 불과 3개월이나 6개월에 그친 본부장이 4명이나 된다. 부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공법검증위원회를 가동하는 와중인 올 초에도 본부장이 바뀌었다. 실무자들이 설계와 시공방법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본부장은 결정을 미룬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이게 정상인가.


전국을 발칵 뒤집은 해운대 엘시티 사건은 주거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땅에 아파트 허가가 나고 그 과정에서 업자와 공직자들이 특혜를 주고 받으며 부정하게 뒤얽힌 토착비리다. 지역 국회의원, 부산시 고위 공무원, 법조인, 금융인, 언론인 등 수많은 사람이 불려 나왔다. 부산 사람 망신을 제대로 시킨 엘시티에 이어 또 오페라하우스 사태가 불거졌다. 청년들이 부산을 떠난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오페라하우스 같은 랜드마크 공연장 하나 제대로 못 짓는 게 지금 부산이다. 부산시 감사나 시의회 행정감사가 진실을 규명할 역량과 의지가 있으리라고 믿을 시민이 얼마나 되겠나. 당장 검찰 경찰 수사가 들어가야 옳다. 그런 수사하라고 우리가 세금 내는 거다.

강필희 논설위원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