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39>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복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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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은 불확실하다.
현대 인간은 결혼 취업 묫자리 등 우리 노력으로 성취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 대개 '점'을 자주 본다.
우리 민족은 소를 희생 제물로 삼아 소 발굽을 보고 길흉을 점치거나, 뼈를 불로 지져 점을 친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지각이나 합리적인 추론에 의해서는 인식할 수 없는 일에 우리는 점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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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은 불확실하다. 현대 인간은 결혼 취업 묫자리 등 우리 노력으로 성취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 대개 ‘점’을 자주 본다. 점집에도 가고 절에 가기도 하며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운세나 토정비결까지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마트폰도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미래를 보려고 했을까?
우선 역사서에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를 기록한 ‘삼국지’에서 동쪽에 사는 세력을 ‘동이’라 부르는데, 이는 한반도에 있는 세력들을 일컫는다. 우리 민족은 소를 희생 제물로 삼아 소 발굽을 보고 길흉을 점치거나, 뼈를 불로 지져 점을 친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도 점을 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특히 신라 왕호 중 하나인 ‘차차웅(次次雄)’이 무당을 뜻한다는 점을 통해 볼 때 고대부터 점을 봤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점술 행위의 흔적으로는 복골(卜骨, Oracle Bone)이라는 유물을 들 수 있다. 복골 문화는 기원전 100~200년 청동기시대 유적인 무산 호곡동 유적에서 처음 확인된다. 삼한~삼국시대에는 동래패총, 낙민동 유적, 고촌리 생활유적 등 부산에 있는 유적에서도 많이 확인된다.
뼈에 남은 흔적을 통해 볼 때 점을 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지지기이다. 불에 달군 도구로 뼈 표면을 지진다. 두 번째는 새기기이다. 날카로운 도구로 뼈에 구멍을 뚫는 행위를 말한다. 세 번째는 앞선 두 가지를 병행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으로 뼈 표면에 힘을 가해 갈라지는 방향을 보고 점을 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복골로 쓰인 뼈로는 사슴 뼈가 가장 많다. 사슴과 멧돼지는 주요 식량자원으로 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슴은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지며 하늘의 뜻을 인간 세상에 표현하는 상징물로도 인식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점이 사슴 뼈로 점을 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일반적인 지각이나 합리적인 추론에 의해서는 인식할 수 없는 일에 우리는 점을 본다. 비록 그것이 비과학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신의 의지로 그러한 현상이 우리 눈앞에 보인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우리가 내일을 희망차게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과거 사슴 뼈로 점을 본 사람들도 현대인의 간절한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같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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