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명나라 과학이 유럽에 뒤지게 된 이유

기자 2023. 1. 31.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500년 전인 명나라 시절까지는 중국의 과학 수준이 아마도 유럽보다 앞서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15세기까지 중국이 더 앞서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15세기 초에 이루어진 정화의 원정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는 명나라 황제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해외 원정을 갔다 온다. 1차 원정의 예를 들면 주선이 길이가 137m, 폭이 56m에 이르는 초대형으로 당시 유럽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커다란 선박이었다. 함대는 모두 62척의 배로 구성되고 승무원이 총 2만8000명 정도 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실로 대단하다. 그 원정대는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반도, 그리고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갔고 많은 진귀한 해외 물품, 특히 아프리카의 진기한 동물들을 배에 싣고 돌아왔다. 한편, 영락제가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며 새로 지은 자금성의 규모도 놀랍다. 1406년부터 1420년까지 지어진 자금성은 높이가 10m에 이르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담의 길이가 4㎞에 이른다. 건물이 800채, 방은 9000개 정도 된다. 성을 에워싸고 있던 해자의 폭은 52m, 깊이는 6m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가 실로 대단하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중국은 대륙 전체가 일찍이 통일되어 다른 국력이 비슷한 나라들과 피 터지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유럽의 역사적 배경과 대비된다. 중국이 주변 국가들 중 가장 힘이 세고 문화도 앞서 있었으니 중화제일주의라는 안일함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수많은 전쟁과 갈등, 그리고 교역 등을 통하여 문화, 과학, 경제가 발전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이 약 500년 전부터 유럽에 뒤지기 시작한 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사회적 차이가 부른 큰 격차

중국의 과학이 유럽에 크게 뒤지게 된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진리탐구 정신’이라는 과학철학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은 르네상스 이후 진리탐구 정신에 입각하여 과학 연구를 해 나간 반면, 중국은 ‘실용적인 가치’ 이상의 과학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대 중국의 과학자들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적 호기심만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어떤 과학적 연구든 그것이 바로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설혹 일부 과학자들이 진리탐구라고 하는 과학철학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연구를 평생 진행할 만한 직업이나 환경이 제공되지 않았다. 유럽과 중국의 과학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사회적 차이가 결국에는 과학 연구의 성과에 커다란 차이를 불러왔다. 유럽 근대 과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좌표계, 미적분학, 지구의 공전, 만유인력, 세포, 주기율표, 전기와 자기, 세균 등의 발견은 동시대의 중국인들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과학적 업적들이다.

그러면 유럽은 어떻게 해서 ‘진리탐구’라는 철학을 가지고 과학을 연구하게 되고 사람들이 그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과학철학과 절대신을 믿는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다. 나는 특히 후자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절대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자연의 섭리가 곧 신의 섭리이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곧 신의 뜻을 탐구하는 것이므로, 진리탐구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지닌 일이었다. 1000년 동안 종교의 지나친 지배가 지식의 발전을 저해하였지만, 르네상스 이후에는 종교가 진리탐구의 정신을 선사하였다. 유럽에서는 종교가 병 주고 약 준 셈이다.

한국도 이젠 ‘진리 탐구’ 중시할 때

그럼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과학정책을 집행하는 정부와 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모두가 진리탐구 정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을까? 실은 그동안 우리는 과학적 진리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였고, 과학자보다는 기술자를 우선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동안은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니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순수한 과학적, 수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들을 중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학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더 실용적일 수도 있다. 미국이 60년 전에 쏘아올린 발사체와 동일한 스펙의 발사체를 우리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서 이제야 겨우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한 것도 우리의 과학 수준이 아직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이론 과학자, 수학자들을 좀 더 많이 양성하고 활용해야 한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