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5년 연금고갈' '월급 35% 날라간다' 연금 불신 조장 보도의 이면

박재령 기자 2023. 1. 3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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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재정추계 결과 이후 불안 부추기는 보도들
고갈시점, 보험료율 등 비현실적 숫자에 "공포 마케팅" 비판
"연금은 신뢰가 중요…세대 갈라치기 그만하고 공론의 장 열어야"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여태 낸 거라도 돌려줘라 각자도생하게”

국민연금 관련 기사의 주요 반응은 '연금 불신'이다. 언론이 비현실적 수치를 내세우며 연금 불안을 부추긴 결과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국민연금에 언론이 공론의 장이 아닌 '싸움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대를 갈라치며 연금의 사회적 수용성을 떨어뜨리고 구조적 개혁 등 필요한 논의를 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 전병목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1월2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를 발표하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지난 27일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하자 28일 신문은 '2055년 고갈', '소득 20% 내야할 판', '문재인 정부 허송세월' 등의 단어를 전면에 내걸었다. 전병목 재정추계전문위원장이 보도자료에 “(추계 결과는) 연금제도 세부내용을 조정하지 않고, 현행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전망해 기금소진연도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참고자료로 활용하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보도는 그 반대였다.

▲ 28일자 한국경제 1면 기사.
▲ 30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한국경제는 28일 기사 <개혁 미룬 대가… 국민연금 고갈 2년 빨라졌다>에서 “현행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 65세부터 연금 수급' 조건을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40년 1755조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41년 적자 전환하는 데 이어 2055년엔 완전 고갈된다. 4차 재정추계 때와 비교하면 기금 수지가 적자 전환하는 시점은 1년, 기금 고갈 시점은 2년 앞당겨졌다”며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저출산과 고령화가 핵심 원인”이라고 밝혔다.

매일경제는 28일 기사 <국민연금 적자 피하려면… 2년 뒤부터 소득 20% 내야할 판>에서 “기금이 고갈된 이후 '바로 걷어 바로 주는' 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국민이 부담할 보험료율은 현재 9%에서 급증해 2080년에는 34.9%(부과방식비용률 기준)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며 “2080년 기금이 고갈된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 재정 지원이 없다면 월 소득이 300만 원인 사람은 무려 105만 원을 매달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 28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는 1면에서 “분석 결과 재정목표 시나리오별(적립배율 1배, 2배, 5배 유지하는 경우)로 필요보험료율은 17~24% 수준으로 제시됐다”며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최소 2배로 올려야 한다는 얘기”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1면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5년 동안 연금 개혁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전보다 더 악화된 상황에 직면한 셈”이라고 했다.

해당 보도들엔 '세대 분열'과 '연금 불신'이 주요 반응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27일 기사에는 “국민연금 대국민사기다. 내 돈 돌려줘라. 왜 근로자 소득에서 국민연금을 강제로 뺏어가서 윗세대들한테 줘야 하냐. 이거 완전 폰지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라는 댓글이 달렸고, 30일 중앙일보 기사엔 “그냥 (연금)원금 돌려주고 폐지합시다”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2055년 고갈” 헤드라인에 “공포 마케팅” 비판

'고갈시점'에 주목하는 언론보도 행태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지적이다. 미래에 내가 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심기 때문이다. 이번 재정계산은 지금부터 70년 후인 2093년까지, 국민연금이 현재 가진 모습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정한 추산치다. 각종 주요 경제변수와 인구변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기금이 소진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국민연금기금소진, 정말로 문제인가? 지난 20일 발간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이슈페이퍼(남찬섭 동아대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마치 (연금)제도가 파산하는 것처럼 사망선고날짜 쓰듯 언론이 얘기하고 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오히려 불신을 부추기고 사회적 수용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형태”라며 “저희는 '공포 마케팅'이라고 얘기한다. 2007년 연금개혁할 때부터 반복됐던 패턴이다. 국민연금은 신뢰와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한데 심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을 못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번 재정추계결과 기금소진 후인 2080년에 연금지출은 GDP의 9.4%”라며 “지금도 유럽 각국은 연금지출로 GDP의 1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영국, 독일, 스페인은 기금이 거의 없지만 그 나라 노인 중 기금이 없어서 연금을 못받았다는 노인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2055년 고갈'이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이미 지난 2019년 국회예산정책처는 '2019~2060년 국민연금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국민연금 소진 시기가 2054년으로 정부 추계보다 3년 앞당겨진다고 발표했고 이 때도 조선일보 <국회예산처 “국민연금 2054년 고갈… 정부 예상보다 3년 빨라”>, 동아일보 <국민연금 2054년 고갈… 정부 예상보다 3년 빨라> 등의 보도가 이어졌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이슈페이퍼에서 “미국도 작년 재정추계 때 2034년 기금소진으로 나왔다. 하지만 우리처럼 온 나라가 망할 듯 그러지는 않는다”고 했다.

월급 35% 날라간다…'보험료율 괴담' 진실은

▲ 27일 보건복지부 5차 재정추계 결과 갈무리.

28일 언론은 재정안정이 필요한 보험료율로 17~24% 수준을 제시했다. 소득대체율, 수급 연령 조정 등 연금의 다른 요인을 고정한 숫자다. 하지만 현재 9% 수준인 보험료율을 일시에 20% 수준으로 올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재훈 연구위원은 “2093년 기준의 적립배율(해당연도 총지출 대비 연초 적립금)을 목표로 했을 때 나오는 숫자들”이라며 “19%까지 일시에 올린다는 것이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15%까지 단계적으로 가고 '더 늦게 받자'거나 '덜 받자' 등의 안이 혼합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료율 20%를 넘어 35%까지 언급되는 보도는 '공포' 그 자체다. 매일경제는 “2080년 기금이 고갈된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 재정 지원이 없다면 월 소득이 300만 원인 사람은 무려 105만 원을 매달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연금 기금 고갈 이후 현재의 '적립식' 연금을 그해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충당하는 '부과식'으로 바꿨을 때를 가정한 숫자다.

▲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상담받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해당 보도의 기준인 2080년까지 현 상황이 유지될 리는 만무하다. 더군다나 보험료율 35%는 분모를 '근로소득'에 한정했을 때의 숫자다. 전체 GDP가 아닌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해 과장돼 보인다는 지적이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근로소득만을 분모로 잡으면 당연히 엄청난 숫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공적연금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사용하는 지표는 근로소득이 아닌 GDP 대비 비용률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늘어나는 노인인구 부양부담을 얼마 안 되는 근로소득에만 부과하는 것은 실현가능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라며 “독일은 한해 연금지출의 1/4을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 연금보험료 부과대상소득을 넓히고 조세가 지원된다면 근로소득에만 부과되는 35%가 아니라 GDP 전체의 9.4%를 나누어 부담하게 될 것이다. 부과방식비용률이 아니라 GDP 대비 비용률을 봐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부과방식비용률 35%가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는 월급의 35%를 연금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소득에만 연금보험료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며 조세도 연금지출에 지원해야 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기금소진과 부과방식비용률만 앞세워 월급의 35% 보험료 운운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겁박하는 것이자 재정계산이 주는 보다 큰 함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라고 했다.

▲ 부과방식비용률,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지난 20일 발간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이슈페이퍼(남찬섭 동아대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매번 반복되는 언론의 연금 보도가 세대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이 주도하는 청년-노인 갈라치기는 약간 허구적인 게 있다. 청년과 노인의 불평등보다 청년 내 불평등이 더 심하다. 쭉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는 청년과 여러 상황으로 여기저기 직장을 옮기는 청년 사이의 연금 격차가 더 크다”라며 “청년 세대 내 일자리가 어떤 형태이냐에 따라 노후소득이 확 갈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인데 그 논의가 전혀 안 되고 있다. 언론이 확실하게 보이는 집단을 응집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국민연금은 한 직장에서 40년 일을 한다는 가정으로 설계가 됐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1인 자영업자등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직장인들이 얼마를 더 내야 하고 이런 논의가 상당히 무용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일의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고갈시점을 강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구조적 변화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빠져있는 상황이다. 언론이 공론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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